최은진 유치원장

“우리 아이 손등이 긁혀 왔던데, 무슨 일 있었나요?” “누가 밀어서 우리 아이가 넘어져 다리를 아파하는데 그 애가 누구예요?” “친구들이 안 놀아준다고 유치원에 가기 싫다네요” 아이들 귀가 후에 걸려 오는 전화들이다. 듣다 보면 공연히 울컥하고 속이 끓는다.
대여섯 살 아이 말만 듣고 자기 아이는 잘못이 없고 다른 아이들 때문에 우리 아이가 망가질까 걱정된다는 듯할 때면, 이런 지극정성(?) 아래 자라는 아이가 앞으로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자식을 향한 염려는 이해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특정 아이의 편이 아니라 교실 전체의 편이다. 작은 실랑이와 사소한 상처는 아이들이 부딪히며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어른이 먼저 답을 내리면, 아이는 스스로 풀어볼 기회를 잃는다.
마당에서 모래로 케이크도, 피자도 만들며 노는 아이들 틈에서 혼자 빙빙 도는 아이가 있다. “우리 엄마가 모래 만지지 말랬어요”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에게 “더우면 조끼 벗어도 돼요” 하면 “우리 엄마가 옷 벗지 말랬어요”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이들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엄마’는 성능 좋은 리모컨, 아이들은 그 리모컨이 누르는 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처럼 보일 때가 많다. ‘우리 엄마’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틈을 없앤다. ‘아이를 키우는 건지, 로봇을 만드는 건지’
아이들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엄마가’ 아이들은 그 리모컨이 누르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보일 때가 많아
어느 날 부모 면담에서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뭐라고 하세요?” 하고 여쭸다.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뭐 배웠니? 선생님이 뭐라셨어?” 대개 이렇게 묻는다. 정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