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성 시인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가 잡혀갔다는 소식에 탄식을 내뱉자 듣고 있던 아내가 핏대를 올렸다. “우리나라가 이 이상 어떻게 더 한미동맹을 잘해야 되는데? 우리가 뭐 반미 데모라도 했답니까?” ⃝⃝당 권리당원다웠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았다. “민노총이 작년 7월 미국 뉴욕에 가서 반미 집회한 것도 모르냐?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냐? 지금 국제적으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트럼프 앞에 가서 반미 데모나 하고, 면피용으로 퍼주기나 하고, 약속도 안 지키고! 내가 트럼프라도 사기 친 놈 가만 안 놔두겄다!” 막말이 오갔다.
방으로 들어갔던 아내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와 나를 쏘아봤다. 설마 하던 순간 술상을 엎은 마누라. “이년이~!” 엎어진 조그만 술상을 나는 발로 빠개 버렸다.
⃝⃝당 권리당원이었던 그녀에게 반공교육과 근현대사는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을 터다. 지난번에는 주행 중이던 차에서 귀를 막고 악을 쓰며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다 차를 세우고 내리기까지 했었으니까.
시골 약국에서 천진하게 일하며 가정에도 충실한 내 마누라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만 용감하다. ‘약자는 정의의 이름으로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하겠지.
하긴 나도 시끄러운 건 귀찮고 싫으니까! 잘못된 낡은 정의의 시대를 나는 떨쳐버렸는데, 그녀의 의리(?)는 여전했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보름이 지났다. 요양차 잠시 입원했던 병실을 나와서 홀로 보성 율포 바다에 가는 도중에 지석강 휴게실을 찾았다.
스물네 살에 내게로 와서 중풍 어머니를 모셔야 했던 어린 신부, 시부모 방 옆에 한칸방을 내어 욕실조차 시부모 방을 사용했던 터라, 말 붙일 상대도 없이 고립됐던 어린 아내. 임신복 입은 채로 빨간 입술연지를 바르고,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오는 하나밖에 없는 자기편(?)을 기다리는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울컥하는 한 장면이다.
마두로 소식에 탄식 내뱉자 아내는 핏대를 올리고 막말 오가다 아내가 술상 엎어
문득 그녀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