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중 前 호주대사

퇴근하자마자 아내가 다짜고짜 지난주 중요한 동포 행사가 뭐였냐고 물었다. 한인타운에 옷 수선하러 갔더니 주인이 영사관 차량 번호판을 알아보고는 “영사관에서 왔어요? 지난주 행사에 수백 명이 모였는데 총영사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영사 하나만 딸랑 보냈대요” 하고 불평하더라는 것이다.
외교 목표와 우선순위에 따라 더 중요한 일을 우선하다 보면 일반 동포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때가 생긴다. 그뿐이랴. 우리 기업의 해외 투자 진출이 급증하면서 해외에 거주하는 250만 명 재외국민의 권익 보호, 해마다 3천만 해외여행객의 신변 안전이 영사관의 24시간 지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거기에 서울에서 오는 고위 인사 영접까지 겹치면 주말과 휴일도 반납하기 일쑤다.
하지만 전임자들이 한 번이라도 참석했던 동포 단체, 특히 동포 언론이 관련된 행사라면 불참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동포를 위한 총영사인가, 직원을 위한 총영사인가?’ ‘총영사인가, 총독인가?’ 온갖 모욕적인 기사에서부터 청와대 실세를 안다느니, 국내 언론에 비판 기사를 돌리겠다느니 하는 협박까지 이어진다.
총영사가 아닌 영사가 가면 자신들의 위신에 금이 간다고 여기는 잘못된 풍조도 문제다. 한편 시민권조차 받지 못한 채 입양되어 다시 버려진 한인 입양인, 현지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길거리에서 고통받는 한인 노숙자들을 보면, 영사로서 실제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나를 늘 옥죄었다.
동포 단체 행사에 불참하면 후폭풍이 ‘총영사인가, 총독인가?’ 온갖 모욕적인 기사부터 협박까지 이어져
페루에서 참사관 겸 총영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2011년 8월 23일 아침, 교민 사회의 한 고등학생이 등굣길에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페루는 납치가 잦고,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드물다. 범인들은 곧바로 18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 대사관은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는 단순히 돈 문제를 넘어서, 현지에서 ‘납치가 돈벌이가 된다’는 전례가 생기면 이후 교민이나 한인 관광객이 점점 더 납치나 테러의 표적이 되기 십상인 데다, 납치범과의 금전 거래나 직접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은 협박 전화와 현지 언론의 추측 보도에 시시각각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족 곁에서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고, 납치범이 다시 유선으로 협박해 올 경우의 대응 요령을 숙지시켰다. 또한 현지 지구대 경찰의 수사 방식과 상황 전개에 따른 협상 전략도 설명해 이해를 도왔다.
그럼에도 48시간이 지나도록 실마리가 잡히지 않자 가족의 불안은 증폭되었다. 그런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