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포용 한국 정치에도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前 MBC 기자, YTN 경제부장

알래스카에는 윌리엄 수어드의 이름을 딴 항구 도시와 하이웨이가 있다. 알래스카 사람들은 왜 수어드에 집착할까. 그 이유는 그가 알래스카를 사들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수어드는 제정(帝政) 러시아에 720만 달러를 주고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그는 땅 천 평당 1원에 거대한 자원의 보고를 미국 땅으로 만든 영웅이다.

수어드를 발탁한 사람은 바로 링컨이었다. 수어드는 1860년 당시 대선에서 공화당 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초반에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었다.
파격은 당선 후 벌어졌다. 링컨은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면서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었을 법한 정적 수어드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전당대회에서 링컨을 켄터키 촌뜨기에 수준 이하라고 뭉개던 라이벌을 정부의 가장 중요한 보직에 앉힌 것이다. 측근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링컨은 그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오벨리스크와 수평 광장으로 탁 트인 워싱턴 시가지, 뜨거운 오후의 태양 아래 위대한 역사적 대통령이자 민주주의의 아버지, 에이브러햄 링컨을 추모하는 행렬은 링컨 기념관의 오르막 계단을 가득 메웠다.

켄터키 촌뜨기라 뭉개던 강력한 라이벌 수어드를 측근들의 반대에도 국무장관으로 발탁해

기념관 옆쪽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인자한 모습, 다소 긴 물결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섬세하게 표현된 좌상이다. 왼쪽에는 남북전쟁을 마치고 희생자들의 추도식에서 행한 게티즈버그 연설 내용이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에서 자유가 새롭게 태동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땅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른쪽 벽으로 시선을 돌려 링컨의 감동적인 대통령 취임사를 몇 번이나 읽었다. 남북으로 갈라서고 백인과 노예로, 보수와 진보로 갈기갈기 찢긴 아메리카를 위해 비장하게 호소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링컨 포용 정치의 정점은 같은 변호사 출신이면서 10여 년 동안 그를 끝없이 괴롭히고 비하한 최고의 정적 스탠턴을 국방부 장관에 기용한 것이었다. 참모들의 극렬한 반대에 링컨은 “스탠턴만 한 인물을 데려오면 국방장관을 바꾸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링컨을 끝없이 괴롭히고 비하한 최고의 정적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링컨 숨 거둔 뒤 눈물 흘리며…

그의 혜안은 적중했다. 스탠턴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1865년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저격당한 링컨이 맞은편 가정집으로 급히 옮겨졌을 때 링컨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사람도 스탠턴이었다.

다음날 링컨이 숨을 거둔 뒤 스탠턴은 눈물을 흘리며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바뀐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모든 역사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 이름은 오래도록 영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링컨은 공화당 강경파들에 맞서 남군의 어떤 지휘관도 처벌하지 않았다. 모든 영광은 부하들에게, 책임은 항상 자신에게 있다는 자세를 지켰다. 보복보다는 화해가, 강요보다는 설득이, 비난보다는 칭찬이 공동체를 평화롭게 만든다고 믿었다. 44명의 미국 대통령 중에 생일이 기념일로 정해진 것은 링컨이 유일하다.

워싱턴을 떠나 명연설의 현장을 향했다. 자동차로 2시간 만에 도착한 게티즈버그는 평온했다.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전투지 배틀 필드는 무성한 초록 속에 묻혀 있었다.

치열했던 전쟁은 끝났고 노예들은 해방되어 미국의 새로운 역사에 동참했다. 희생자들의 묘지를 만들고 민주주의 원리를 설파한 링컨의 추억만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나 북군의 조지 미드도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링컨은 150년 전 사람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포용과 협치는 빛나고 있다. 링컨의 길은 오늘날 모든 지도자가 따라야 할 길이다. 적을 친구로 만들어야 평화롭다는 상생 정신은 불멸의 진리다.

수어드나 스탠턴뿐만이 아니다. 체이스 재무장관도 야전사령관 맥클렐런 장군도 링컨을 죽도록 미워했지만 결국은 등용되어 승복했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여기에 링컨의 위대함이 있다. 그 위대한 협치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前 MBC 기자, YTN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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