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근길의 지하철, 마흔아홉의 H씨는 ‘공황장애’를 경험했다. 그는 가슴이 답답해오면서 느꼈던 숨쉬기 힘들 정도의 통증보다 쓰러지면 그냥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훨씬 더 힘들었다고 했다.
MRI 등 온갖 검사를 다 끝내고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공황장애라는 걸 알게 된 H씨는 그제야 자신의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H씨는 “돌아보니까, 30대가 문제였어요.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만만했으니…”라고 했다.
“30대에 이미 공황장애의 기미가 보였던 건가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때부터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30대가 가장 왕성한 때 아닙니까? 회사생활에 적응하느라고 한창 힘들기도 했고요. 술, 담배 많이 하고, 회식 가서 고기 많이 먹고, 그러다 보니 살이 찌고 배도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운동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헬스 다니는 것도 스트레스라서 오래 하지 못했죠.
그 지경인데도 ‘아직 30대니까’라고만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하죠”
내가 다시 물었다. “만일 30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몸을 관리하시겠어요?”
H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우선 ‘정신력’에 대한 엉뚱한 믿음부터 없애야겠죠. 정신력이 더 중요하다는 둥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둥 하는 그런 오해 말이에요. 저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비로소 정신력이란 게 체력이라는 껍데기 없이는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H씨는 덧붙였다. “후배들한테 말해주고 싶어요. 무슨 일이든 오래 하고 싶으면 체력부터 먼저 기르라고요, 특히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 굴리며 사는 사람들, 정신력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몸을 소홀히 하는 거 보면 정말 안타까워요”
“만일 3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물음에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믿음부터 없애야
L씨는 마흔을 넘으면서부터 몸이 자주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과로했나, 일을 줄여야 하나’ 생각했지만 승진을 앞두고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마당에 몸을 돌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피곤한 중에도 음주와 흡연을 계속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어요. 내가 누군가? 가진 거라곤 건강뿐 아닌가! 최소한 육십까지는 병원에 드나들지 않아도 될 거야,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착각에 빠져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46세가 되던 해에 L씨는 뒷골에서 시작된 통증이 어깨로, 허리로 내려와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팔다리조차 올리기 힘들 정도였다. 결국 회사를 결근하고 며칠 쉬었더니 통증이 한결 완화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L씨는 그때야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았고, ‘화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황당하더라고요. 내가 화병에 걸렸다니? 화병은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나 남편 때문에 속 썩는 중년 여자들이 걸리는 병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신과 의사는 요즘엔 화병이 중년 남자들한테 더 많다고 하더군요”
L씨는 덧붙였다. “특히 자신을 죽이고 두루두루 잘 지내려고 애쓰는 타입의 성격 좋아 보이는 직장인이나 가족들에 대한 불만을 꾹꾹 누르고 사는 은퇴자들이 화병에 잘 걸린다고 해요”
화병이란 마음의 고통이 있으니 빨리 구조해달라는 신호다.
얼마 전에 모 신문에서, 2013년에 프로야구 최고령 타격왕 기사를 읽었다.
이병규 선수는 최동원 선수와 대조적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투수 최동원은 아파도 눈치 보느라고 참고 뛰면서 그 많은 경기를 소화해 내던 선수였다.
최동원 선수가 30대 초반에 유니폼을 벗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한창 시절 너무 몸을 혹사했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면 이병규 선수는 매사에 무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프지 않으려고 철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아프기 전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잤다”고 말한다. 회식할 때도 절제를 아는 선수였다고.
이병규 선수의 ‘몸 아끼기’ 목록은 다음과 같다.
야구 선수에게는 눈이 중요하므로 TV도
좋아하는 프로로 딱 한두 시간만 본다.
차 안에서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담배도 안 피우고 콜라도 안 마신다.
잘 쉬는 것도 중요하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그냥 누워 있기도 한다.
시즌이 끝나면 친구 한 명 데리고 여행
가서 좋은 거 먹고 쉰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서 안 되면 자신을 용서했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내 몸을 소중히 여기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