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저녁을 아주 맛있게 차려 내왔다. 꽁치 김치찌개에 라면을 삶아 넣어 준 것이다. 라면에 꽁치통조림을 넣어 먹던 배고픈 대학 시절이 떠올라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었다. 레코드판을 뒤져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젊은 시절 클래식 음악이 뭔 줄 모르고 마구 듣다가 그 곡을 처음 발견하고 맑은 샘물을 마시는 듯했다. 묵직하게 퍼져 나오는 첼로 선율에서 오늘은 유독 외로움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분명 짙은 외로움을 안고 살았을 바흐! 그럼에도 그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은 왜일까?
세상 사람들이 좇는 것들을 향해 함께 가지 못하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그의 음악에서 순수한 인간성이 들려오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이상을 향해 가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 오면 나도 순수한 인간, 고귀한 인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가 그 천재성으로 돈이나 권력만 얻고자 했다면! 그러나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좇는 경쟁적인 가치들을 훌쩍 뛰어넘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았기에 내 가슴에 그런 고귀함을 안겨준 것이다.
오늘날 외로움 그리움 없는 이들 너무 많아 권력만 쌓으면 기뻐 만족하는 사람에게 그까짓 것은…
그에게 세상 가치만 좇는 인류가 얼마나 안타깝게 비쳤을까. 사람들이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그의 안타까움이 그를 더욱 외롭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음악에 이런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내지 않았을까. 그의 외로움은 저 높은 곳을 향해 함께 가고 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오늘 우리나라에는 외로움도 그리움도 없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더 높이 더 많이 쌓기만 하면 기뻐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이나 돈만 들어오는 일이면 그까짓 외로움이나 그리움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 가면 공부에 파묻혀 외로움도 그리움도 잊고 하나라도 더 머리에만 집어넣으려는 열기로 가득했다. 그럴 때면 가끔 무섭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저 친구들이 더 많은 지식을 쌓으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할 것이고. 더 많은 권력을 갖고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 할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우리 권력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만족감이 가득하다. 과거건 현재건 대통령을 보라! 국회의원들을 보라! 거짓과 위선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고함치고 다그치며 상대방이 위축될수록 파안대소한다.
인간다움을 저 멀리 던져버린 그들에게는 오로지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권력만이 기쁨과 만족을 주는 신이라도 되는 듯 보인다. 그래서 더 높이 더 많이 쌓으려 온 힘을 쏟고 조그만 권력만 생겨도 마구 휘둘러 댄다. 입법권력만 가지면 그 어떤 법도 맘대로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경찰도 믿을 수 없어요. 피해자인 저를 감옥에 가두고 살인자는 뇌물 받고 풀어줘요” 캄보디아에 갇혀있었던 우리 국민의 증언은 검찰도 경찰도 견제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절규가 아닐까.
그런데 검찰을 없애면 경찰권 남용으로부터 누가 국민을 보호해 준다는 말인가. 정치검찰의 폐해만 없애면 되는데 검찰 자체를 없애버린다고 하니… 그간 검찰이 경찰권 남용을 막아주지 않았던가. 결국 범죄에 노출되는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 너무나 뻔한데도 검찰 해체가 마치 국민을 위하는 일인 양 호도한다. 정권의 말을 듣지 않는 검찰은 없애고 정권의 입맛대로 하는 수사기관만 남기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경찰 믿을 수 없어요. 피해자인 저를 감옥에 가두고 살인자는 뇌물 받고 풀어줘요’ 이 증언은…
특별재판부 설치는 삼권분립과 사법권 독립에 저해되는데도 밀어붙이는 것은 정권의 입맛대로 재판을 하여 더 큰 권력을 갖고 싶은 의도가 아닌가. 독재 권력은 안 된다며 외쳐 부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입법 독재를 즐겨하면서 그것이야말로 민주라고 외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위헌적인 법을 통과시킨 뒤 그들의 얼굴에는 만족감과 기쁨이 가득하다. 그들에게서 그 어떤 외로움도 그리움도 읽을 수가 없다.
돈과 권력이 들어오면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에서 멀어질 때만 외로움을 느낀다. 돈과 권력이 들어오면 외로움은 사라지고 행복감으로 물들어간다. 그러나 높은 가치를 향해가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가까이 오면 더욱 외로워한다. 그 돈과 권력을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 고심하느라 돈과 권력만 쌓는 데 몰두하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야 하기에 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들이 진정 갖고 싶은 것은 인간다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인간의 한계를 알기에 끊임없이 신에게 가까이 가려 하기에 외로움 속에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야말로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지는 길이기에 오히려 행복을 맛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하찮은 인간이지만 돈과 권력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났다는 희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가려는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자부심은 인간이 처절히 외로울 때만 생겨나는 선물이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그런 외로움이, 그의 그리움이 들려온다.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앞다퉈 바흐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사람들이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연주하려는 것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외로움을 잃어가는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인류에게 희망이 아닐까. 연주하는 그들의 얼굴에도 고귀한 외로움이, 고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낮은 사람은 권력 없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만 주어지면 기뻐하는 사람 국민들이 그런 사람들을 높다고…
그러나 선거에 이기려고 자신은 드높이고 상대방은 깔아뭉개고 당선이라도 되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자들의 얼굴을 보라! ‘아, 저 사람들이야말로 아주 낮은 사람들이구나’
낮은 사람은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돈과 권력만 주어지면 희희낙락하는 사람이다. 안타까운 것은 국민들이 그런 낮은 사람들을 높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바흐처럼 더 높은 가치를 향해가는 고귀한 사람들을 낮은 사람 취급한다. 가난해서 불행하게 살았다는 둥 함부로 얘기한다. 세상이 바로 되는 유일한 길은 ‘낮은 사람은 낮게, 높은 사람은 높게’ 보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이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과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 다시 되돌아본다. 낮은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하나라도 해나가는 사람이 될 것인지! 외로움과 그리움에 물든 그 묵직한 첼로 소리는 오늘도 내게 더욱 인간답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