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앵글에 잡힌 인품

나의 예술 이야기

이은주 사진작가

1993년 이해인 수녀의 마더 데레사 하우스 방문 때

한 번밖에 못 만났어도 항상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또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내게는 마더 데레사 수녀가 그런 분이다.
1993년, 나는 인도의 캘커타 비행장에 혼자 내렸다. 택시를 타고 지도도 없이 그냥 “마더 데레사 하우스 가자”고 했더니 두말없이 마더 데레사 하우스 앞에 있는 외신기자들이 묵는 호텔로 데려다주었다. 그 정도로 마더 데레사는 캘커타에서 유명했다. 그때 이해인 수녀도 며칠 전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수녀님 방의 전기 스위치는 우리의 1960년대처럼 두꺼비집같이 스위치를 올리고 내리는 재래식이었다. 수녀님은 그 전기를 절약하느라 사람이 오면 당신이 손수 켜고, 돌아가면 달려가 껐다. 절약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수녀님 재산은 뭐 뭐가 있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분은 성경책과 신발, 사리 두 벌, 묵주가 전 재산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복한 분인가! 나는 이렇게 가진 것이 많은데도 또 욕심을 부리는구나’ 취재 내내 그 생각만 했다.
데레사 수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결심했다. ‘돌아가서 가톨릭 공부를 하자. 수녀님처럼 다섯 개만 갖고 살지는 못하지만 내게 있는 많은 것들을 버리자’고. 그 후 수녀원에도 드나들고 대학교에서 강의도 듣곤 했는데 아직까지도 교리를 마치지 못했으니…

‘수녀님 재산은 뭐가 있냐?’ 묻자 ‘성경책과 신발, 사리 두 벌, 묵주가 전 재산’ 마더 데레사의 답 듣고…

영화 <백야>의 주인공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러시아 레닌그라드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출신으로 레닌그라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다. 바리시니코프의 망명 요청을 미국이 받아들여 그는 뉴욕시티 발레단의 예술 감독이 되었다. 그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가 한때 문화적으로 긴장 관계가 되었다.
바리시니코프는 발레계에서는 명성이 높았지만, 일반에게 알려진 것은 영화 <백야>에 주인공으로 나오고 난 뒤부터였다. 나도 그 영화를 보고 ‘저 사람 언젠가 꼭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2001년 2월 LG아트홀에서 바리시니코프를 초청했는데, 그 무렵 그는 뉴욕시티 발레단 예술감독을 그만두고 현대무용을 하는 바리시니코프 댄스컴퍼니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해 국내 관객들 반응은 굉장했었다. 그때 그의 사진을 내가 맡아 찍었는데 완전히 007작전처럼 찍어야 했다.

바이 디자인 CEO 제이 리

나는 저명한 예술계 인사들과 명사들의 얼굴사진을 많이 찍었다. 대체로 성공했거나 명성 있는 사람은 욕심도 더 많았다.
그런가 하면 엄청나게 성공했으면서도 욕심을 완전히 탁 내려놓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2006년 나는 미국의 많은 주州를 다니면서 CEO들을 찍게 되었다. 오늘 하루를 이 주에서 자면 내일은 저 주에서, 또 모레는 다른 주에 가 있고, 이런 식으로 대륙을 종횡하며 한국의 교포 1세대 CEO들을 찍었다.
모든 것을 가졌는데도 겸손한 사람은 첫 만남으로도 기억에 남았다. 잘난 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항상 베푸는 사람은 다시 만나고 싶고, 생각나면 전화 통화라도 한번 하고 싶어진다.
대표적인 인물은 미국의 여성 스포츠의류 회사 ‘바이 디자인’의 CEO인 제이 리였다. 그녀는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의류업체를 일구어 일약 기업체의 CEO가 됐다.

한국에서 여고를 졸업하고 무역회사 직원으로 있었는데 그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사업하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80년이었다. 그녀는 1986년 의류수입회사인 ‘심스 인터내셔널’에 들어가 디자인과 상품 개발을 맡았는데 그녀가 개발한 자수 놓은 스웨터가 히트를 친 것이다. 이를 유심히 지켜본 유럽의 한 투자가가 자본을 대겠다며 사업을 제의, 1994년 ‘바이 디자인’이 탄생했다. 메이시, 제이시페니, 콜스, 월마트, 타겟 등 세계적인 매장을 가진 대형백화점이 주 고객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성공하는 길이 생긴다. 기업인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 한,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미국의 ‘아시안 여성기업가 협회’가 주는 ‘올해의 여성기업인상’을 탔다.

처음에 뉴욕에서 제이 리를 만나기로 약속하고는 혼자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성공한 여성 CEO니까 얼마나 멋지게 하고 나타날까’ 그런데 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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