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윤학

손녀 현이가 친구 영아와 운동장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정미가 다가와 영아에게 줄넘기를 내놓으라고 했다. 영아가 머뭇거리자 정미가 소리 지르며 영아를 밀치고 줄넘기를 빼앗았다. 그걸 본 현이가 “친구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하자 정미가 “너, 현이랑 놀지 마!” 하며 영아의 손을 잡아끌고 갔다.
현이가 교실에 들어가자 친구들이 정미 곁에 모여 재잘대고 있었다. 그런데 영아까지 정미 옆에 앉아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초등학교 입학 후 영아와 친하게 지내던 현이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다. 영아를 도우려고 정미에게 맞섰던 건데… 영아까지 자기를 멀리해 현이는 학교 가기 싫다며 우울해했다.
현이 엄마는 어릴 적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여동생에게 현이 일을 상의했다. 현이 이모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집에서 용돈을 넘치게 받는 이웃 아이가 방과 후 문구나 과자를 사주며 친구들을 거느렸다. 현이 이모도 과자를 얻어먹고 바로 이웃인 그 집에서 놀며 그 아이를 따라다녔다. 고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에게 대장처럼 굴며 막 대하는 그 아이가 불편해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현이 이모를 따돌리고 골탕 먹이곤 해 가슴앓이를 했었다. 그 과정에서 현이 이모에게 꿈이 생겼다. 그 이웃 아이의 가정은 가족 간에 다정한 대화는 없고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는 듯했다. ‘가족 간에 진실한 대화가 있다면 저렇게 비뚤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 어린 시절의 안타까움은 현이 이모에게 가족 간의 사랑과 대화를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갖게 했다
현이 엄마와 이모는 정미의 그런 행동도 부모의 경쟁적인 삶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확신했다. 부모의 경쟁적인 마음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스며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내고 빨리 푼 순서대로 교탁에 나와 앞자리에 앉게 했다. 서로 앞서려는 경쟁심이 교실에 가득했다. 나도 문제를 빨리 풀어 뽐내고 싶어졌다. 나는 매번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놀란 눈치였다. 늘 1등 하던 아이가 내 뒷자리에 앉게 되자 신기한 모양이었다. 선생님도 가르치지도 않았던 녀석이 맨 먼저 문제를 푸니 기분이 묘한 듯했다.
‘이 자리 앉지 마!’ 심술부려 손을 딱 잡고 ‘힘 있으면 손 빼봐. 힘없어 참는 줄 알지? 싸우기 싫어 그러는 거야’
어느 날 선생님이 나에게 ‘해남 물감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이 그 별명을 합창하며 나를 놀렸다. 참 외로운 나날이었다.
내 아이들, 그리고 손녀에게까지 이런 아픔이 되풀이되는 현실이 착잡했다. 그렇게 명랑하던 현이가 요즘은 우울한 얼굴로 집에 들어온다니… 손녀의 아픔에 아무것도 못 해주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한약방에 드나드는 어른들과 친하게 지냈다. 어른들은 나와 경쟁하려 들지 않고 재미있게 놀아주었다. 나는 어른들 얘기를 듣거나 함께 바둑, 장기도 두었다.
손님이 없을 땐 책을 읽었다. 책은 나를 온갖 세계로 데려갔고 재벌도 장군도 위인도 만나게 해주었다. 놀리거나 싸움을 걸어오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즐거운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 모두가 나를 놀린 건 아니었다. 놀리는 아이들을 말려주는 친구도 있었고 그 친구 집에 가서 밤새워 놀기도 했다. 그 모두가 내게는 너무나 귀한 자산이 되었다. 어린 시절 그런 억울함을 겪었기에 내가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듯이, 현이 이모가 세상 모든 가족이 가족답게 지내게 하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듯이, 손녀도 그런 자산이 쌓여 아름다운 꿈을 품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얼마 후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현이가 참 보통이 아니에요. 운동회에서 현이가 달리기 1등으로 들어오자 2등으로 들어온 정미가 1등 자리를 가리키며 ‘너 이 자리에 앉지 마!’ 심술부리더래요. 그때 현이가 정미 손을 딱 잡고 ‘너 힘 있으면 손을 빼봐’ 했대요. 현이가 힘이 세잖아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정미가 안간힘을 쓰며 손을 빼려 했지만 못 빼더래요. 현이가 한마디 했대요.
“너, 내가 힘이 없어서 참는 줄 알지? 난 싸우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하고 손을 놓아주었대요. 그 후로는 정미가 못되게 굴지 않는대요”
나는 너무 기뻐서 박수를 쳤다. 겨우 일곱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우리 대통령들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그의 걸음걸이만 봐도 ‘대통령 놀이’ 한다는 생각에 큰일 났다 싶었다.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갖고 있는 권력을 고심하며 사용하지만, ‘대통령 놀이’는 권력을 더 높이 쌓으려고 끊임없이 싸우려 든다. 그는 대통령 권력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차고 넘치는데 입법권이 없어 일을 못 한다며 야당과의 투쟁에 힘을 쏟았다.
이재명은 그 전투를 뚫고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된 후 맨 먼저 무엇을 할까 궁금했다. 가장 먼저 누구누구를 잡는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여당 인사들과 끼리끼리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 이 사람까지 대통령 놀이를 한다면!’ 걱정이 앞선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심하는 사람이지만, ‘대통령 놀이’ 하는 사람은 거슬리는 사람들 무릎 꿇려 권력을 더 키우는 것으로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힘이 있어도 휘두르지 않는 어린아이도 있다! 힘이 있어도 함부로 쓰지 않는 대통령이 ‘대통령’이고, 힘이 있다고 마구 쓰는 대통령은 ‘대통령 놀이’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 놀이’는 거슬리는 사람들 무릎 꿇려 권력 키우는 재미 하지만 힘 있어도 휘두르지 않는 아이도 있다!
요즘 언론도 누구 체포, 누구 구속으로 화면과 지면을 온통 채우고 있다. 화합과 비전을 담아야 할 언론인들도 분열과 투쟁에 휩쓸려 ‘언론인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는 힘만 주어지면 재판관 놀이, 국회의원 놀이, 문화 예술인 놀이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회사원도, 공무원도, 교수도, 의사도 놀이를 하려 든다.
놀이가 아니라 그 자리에 맡겨진 직무에 충실한 진짜 회사원, 판사, 의사, 대통령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그러면 내 손녀도, 아니 우리 모두의 손자의 손자까지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대통령 놀이’ 하다 감옥에 가거나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더 보아야 하는가.
발행인 윤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