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윤학

몇 년 전 외교부에 근무하던 중학교 동창이 찾아왔다. 식사 중 친구가 “중학교 때 네가 1등이었는데 2등 상 받았지” 하는 것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도 알고 있었다니 깜짝 놀랐다.
중3 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국어 영어 수학 점수 합계가 나는 282점, 그 아이는 278점이었다. 내가 1등이 분명했는데 담임인 국어 선생님은 그 아이가 1등이라고 발표했다.
아무래도 이상해 성적집계표를 봤더니 내 점수는 총 327점, 그 아이는 330점으로 고쳐져 있었다. 선생님은 국어가 중요한 과목이라 150점을 만점으로 계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어 점수를 월등히 높인 그 아이가 1등이 된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선생님께 항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어 영어 수학 합계 282점인 내가 1등인데 담임선생님은 278점인 그 아이가 1등이라고 발표
아이들 모두 그 성적집계표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후로 시험만 보면 나는 점수로는 1등이면서도 국어에 가중치가 적용돼 2등으로 발표되곤 했다.
점수를 조작할 수 없는 전국 일제 모의고사에서는 내 성적이 그 아이를 훨씬 앞섰는데 그럴 때는 선생님이 한 번도 등수를 발표하지 않았다.
학기 초 국어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왔었다.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학이는 공부 잘하니까 선생님들에게 술도 사고 하면 큰 상도 받을 수 있어요”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술 사고 받는 상을 받아서 뭐 합니까” 하자 선생님이 그날 기분이 몹시 상해 돌아갔다. 그 후 학교 시험 때마다 국어 성적 때문에 나는 계속 2등이었고 졸업식 때도 2등 상을 받아야 했다.
얼마 전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을 보며 그 사건이 떠올랐다. 야당은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권한을 갖기 때문에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임명을 거부하자 탄핵소추를 했는데 의결정족수가 문제 되었다.
헌법재판소 해설집에는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으로 한 행위에 대해서는 재적 3분의 2 이상으로 탄핵소추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므로 대통령에 준해 3분의 2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헌법학 박사인 나도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의결정족수 1/2이냐, 2/3냐 결정은 사지선다형 문제보다 훨씬 쉬워
그런데 야당은 담임선생님 편의대로 국어 점수를 올려 나를 2등으로 만들었듯이 국무총리에 적용되는 2분의 1로 낮추어 쉽게 탄핵소추를 가결했다. 나는 언론도 국민들도 야당 의원들조차도 그걸 받아들이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이 국어 선생님의 편법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듯 야당 의원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늘 정의를 부르짖는 언론도 문제 삼지 않았다.
참 놀라운 일이었다. 내 편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을 때 네 편뿐만 아니라 결국 내 편도 정의로운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인데… 네 편의 잘못은 침소봉대하고 내 편의 잘못은 입에 올리지 않는 국민들이 잘살 수 있었겠는가. 중학생 때처럼 외로움이 밀려온다.
더 놀라운 일은 권한대행 탄핵 심판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으로 권한대행 역할이 국정 운영에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헌법재판소가 최우선으로 권한대행 탄핵 심판을 서두르리라 믿었다. 권한대행의 의결정족수가 2분의 1이냐, 3분의 2냐 결정하는 것은 사지선다형 시험문제보다 훨씬 쉬워 시간도 노력도 요하지 않는 일인데도 시간을 끌고 있다.
헌법재판관이라면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정족수쯤은 당연히 알고 있지 않는가. 평생 헌법에 대해 고민해 보지도 않은 채 민·형사재판만 주로 해왔던 헌법재판관들에게 헌법재판을 맡기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최고의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한 그들이 과연 헌법 의식이라도 갖고 있는지 국민들을 존중이나 하는지 암울하기만 하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명 재판관이 다수라서 탄핵 심판을 미루고 있다고 의심을 사서야 되겠는가.
유신 시절 대학에 입학한 어느 봄날 내 자취방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담임 선생님이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어 대통령 선거를 하러 서울에 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나를 시내 번화가 여관으로 데려갔다. 장충체육관 대통령 선거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대의원이 숙식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만나는 대의원들에게 “내 제자입니다. 서울법대생이에요” 하고 나를 인사시켰다.
멋모르고 따라나섰다가 쑥스럽기만 했다. 그 후에도 서울에만 오면 나를 불러냈다. 선생님은 서울법대생이라며 나를 앞세우고 서울에 올라온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대접을 받곤 했다.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생님이 불러도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요즘 권한만 주어지면 남용하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절차를 지키지 않고 계엄 선포한 대통령, 수사권 없는 내란을 편법을 동원해 수사하려 드는 공수처, 증인으로 불러놓고 죄인 다루듯 다그치는 국회의원들, 탄핵 심판은 빨리하라 독촉하면서 자기 재판은 미루고 미루는 이재명 대표, 결론 내기 쉬운 그 시급한 권한대행 심판은 미루면서 정작 신중해야 할 대통령 심판은 속도 내는 헌법재판관들…
내 눈에는 그 모두가 중학생 때의 선생님만 같다. 그 선생님처럼 권한을 남용하고 불법을 행하면서도 그럴듯한 구실을 들먹이며 꽤나 국민을 위하는 척한다. 그 선생님이 국어가 중요하다는 구실을 내세웠듯이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며 내 편에만 이로운 결정을 해서 그 대가로 출세만 하려 드는 ‘최고위’ 공직자들이 너무 많다. 인간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민형사재판만 했던 재판관들에헌법재판 맡기는 게 온당한지 시급한 한덕수 대행 심판 미루면서
사람들은 지금 모두 침묵하지만 그 속셈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의 등수 조작 사실을 내 친구들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대학생이 된 선생님의 아들에게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분명하게 들려주었다.
그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에서. 그런데 아들은 무덤덤했다. 아, 이래서 세상은 늘 불법과 탈법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인가!
앞으로도 정의를 내세우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그들의 발가벗은 모습은 드러나고야 만다.
고위공직자라며 자랑스러워했던 자식들에게도 부끄러운 아버지로 남지 않을까? 술을 많이 드시던 선생님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조문을 간 나는 선생님의 삶을 돌아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발행인 윤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