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일그러진 영웅

윤혜원 기자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교실로 한 아주머니가 씩씩대며 들어서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김OO이 누구야? 왜 XXX를 괴롭히는 거야? 도대체 왜?”
우리 반에 장애가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였다.
우리 중학교는 강남 8학군에 속해있었음에도 강남 8학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불량한 친구들이 많았다. 워낙 그런 친구들이 많다 보니 평범한 친구들도 싸움 잘하고 담배 잘 피우는 그 친구들을 동경하는 눈치였다.
같은 반 친구임에도 힘이 좀 센 친구들은 약한 친구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고, 약한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강한 친구들로부터 맞는 것을 보면서 충격에 휩싸였다.

김OO이 누구야? 왜 XXX를 괴롭히는 거야? 도대체 왜?”
우리 반에 장애가 있는 친구 어머니의 출현으로 드디어 ‘터질 게 터졌구나’ 생각하는 순간, 반 아이들이 “무슨 소리예요~”

그런 분위기에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이 모두 잘못되어가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그게 잘못됐다고 소리낼 용기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공부를 잘하다 보니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았다. 그런 데다 똑 부러질 것 같은데, 의외로 허당인 나를 여자 친구들도 많이 챙겨주며 좋아해 주었고, 심지어 남자 친구들에게도 은근히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중학교로 올라오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상하게 내 주위에서 늘 장난을 치던 남자아이들도 없어지고 여자아이들도 어쩐지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것이 내 외모의 변화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자그마했던 앞니가 대문짝만해지고 안경을 쓰기 시작한 데다 여드름까지 나면서 너무나 못생기게 변해버렸다. 진짜 맹해 보이는 얼굴은 나의 허당스러움을 매력으로 보이게 하기는커녕 저절로 무시하고 싶게 만들어주었다. 노는 친구들이 많은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것도 오히려 나를 멋없어 보이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늘 앞에 나서서 리드하던 나는 점점 소심해졌고 자신감도 잃어갔다.
그 친구 어머니의 출현으로 드디어 ‘터질 게 터졌구나’ 생각하는 순간, 반 아이들이 우르르 그 어머니한테 몰려가 “무슨 소리예요~ 오히려…”

spot_img

新聞이냐 舊聞이냐

발행인 윤 학 그림 이종상 어릴 적부터 신문을 보아왔다. 그런데 10년, 20년, 30년 신문을 보면 볼수록 신문新聞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좌절된 신의 한 수

박경민 경영컨설턴트 일본을 알자! 일제 강점기 36년간의 굴욕은 일본의 개항과 조선의 쇄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만 탓할...

색 예쁘다는 눈 먼 어머니

Rawia Arroum 소설가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아침 늦은 시간까지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방으로 올라갔다.어머니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햇살이...

사슴 숨겨준 포도나무

이솝우화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 한 마리가포도나무 밑에 숨었다. 포도나무가 숨겨준 덕분에사냥꾼들은 사슴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안심한 사슴은 포도나무 잎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 사냥꾼...

기생에게 ‘여사’ 존칭?

김재연 前 KBS 국장 형님은 사극 연출가로 승승장구하면서도 오래도록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 기저에는 젊은 날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었던...

관련 기사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윤혜원 기자 제주도로 2박 3일 출장이 잡혔다. 아이들이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고 해 과감히 데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과 관광지를 돌아다니거나 놀아줄 틈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나의 신혼은 월셋집부터!

윤혜원 기자 “이 많은 집 중에 우리 두 사람 들어갈 집이 없다니…” 신혼집을 구하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집값 비싸다’는 현실의 벽을 피부로 느꼈다.집이 좀 괜찮다 싶으면...

친구 L의 가출

윤혜원 기자 중학교 시절 나는 칠공주파였다. 껌 좀 씹고 사고 치는 ‘칠공주파’는 아니다. 당시 ‘프리챌’은 친구들끼리 사진도 공유하고 글도 주고받는 인터넷 공간이었다. 2학년이 되면서 흩어지게...

자전거 데이트 씽씽!

윤혜원 기자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발견한 자전거. 어린 시절 아빠가 사줬던 자전거와 똑같겠거니 하고 자신 있게 탔는데 몸이 기우뚱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