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가 그립다

정명지 교사

교사 초년 시절, 아침 일찍 복도에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림새와 짙게 풍겨오는 생선 비린내로 보아 생선을 파는 분 같았다.
“아이고, 선생님이세요. 저 신호 엄마예요. 우리 신호 맡겨놓고 인사도 못 드리고…”
그녀는 앞에 차고 있던 전대를 열더니 생선 비늘이 묻은 지폐 두 장을 세어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너무 당황하여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신호 어머니는 참담한 얼굴로 “이러시면 저를 무시하시는 겁니다.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건데…” 하면서 굳이 내 주머니에 지폐를 넣고 황망히 돌아서 갔다.

따라가서라도 되돌려드리고 싶었지만 신호 어머니의 얼굴에서 본 간절한 마음, 더 정확히 말하면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큰 사랑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아들인 신호에게 주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인지 학급 아이들 하나하나가 따로따로 귀하게 보이지는 않을 때였다.

그런데 그 어머니 말씀에서 자식 사랑이 넘쳐 나와 나를 물들였는지 70명 한 덩어리로 묻혀있던 그 아이들 하나하나가 제각각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것은 신호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함께 귀한 존재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신비로운 확산 작용이었다. 나도 부모의 눈으로 제자들을 보게 된 것이다.

‘네 아빠가 중동에서 일해 사 온 만년필, 네 엄마가 평생 못 써본 양산을 선생인 내게 주셨어 왜 그랬을까?’

그 순간, 다른 어머니들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아, 모든 아이의 부모가 다 이렇게 자식을 걱정하고 잘되길 바라겠구나. 형편이 안 되어 학교에 못 오시는 어머니들의 마음도 이리 간절하시겠지’
그때 그 순수한 촌지는 내게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감염시켜 주었고, 나는 반 아이들 모두에게 그 사랑을 옮겨주었다. 만약 그 사랑이 그 아이에게만 갔다면 그건 독이 되었을 것이다.

25년 전,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역의 중학교에서 담임을 할 때였다. 반에 들어가면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해 코를 찌르던 그 냄새는 슬펐다.
아이들의 곤궁한 얼굴을 보며 그 학교에 있는 동안 나는 외식을 삼갔다. 물론 부모가 찾아오는 일도 거의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러 나가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준오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준오는 그 당시 결석도 잦고 담배도 피우고 공부도 안 하고… 가정형편도 지극히 빈궁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내게 파카 만년필과 양산을 내놓으셨다. 중동에 가서 일하는 아이 아버지가 사 왔다며.

나는 그 순간 그 열사의 나라에 가서 막노동을 하며 사 온 그 귀한 것을 내게 주는 그 마음 앞에서 교사로서의 내 자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내가 이런 것을 받을 만큼 아이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했는가.
나는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준오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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