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의 하루 나의 하루

이근용 신부

책만큼 인생을 폭넓게 다룬 분야가 또 있을까.
70년대 당시 까까머리 학생이었던 나는 소련의 체제 비판 작가 솔제니친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읽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미친 듯이 읽어 내려갔다. 더욱이 주변 사람들과 두루 돌려봐야 했기 때문에 책 욕심이 더 많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사회체제가 무언지, 비판 의식이 무언지 전혀 알지 못하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다 읽어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줄어드는 페이지만큼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소름이 돋을 만큼 정교한 수용소 생활에 대한 묘사 때문일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느새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학생 때 읽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책 귀한 시절이라 줄어드는 페이지만큼 안타까워

생선을 먹으면서는 괜히 뼈까지 씹어보기도 했고,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고서는 이빨 사이로 살살 그 느낌을 가져보려 했다.
블록 쌓는 건축 현장을 보면 괜히 마음이 설레기도 했고, 줄칼 하나라도 괜히 멋져 보여 몰래 감춰둬야 할 그런 보물 같았다.
그러나 말과 글을 다루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문득 사람이 쓰는 말과 글에 큰 회의를 가질 때가 있다. 우리는 과연 말과 글을 얼마나 믿고 있을까.

나는 뉴질랜드의 대학에서 10여 년간 한국어와 언어학을 가르쳤다. 한가한 뉴질랜드 초원에서 살다 돌아오니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서울이 어지럽기만 했다. 특히 ‘말’이 그랬다.
처음 뉴질랜드에 갔을 때는 잘 안 들리는 영어를 신경 쓰고 듣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퇴근하자마자 쓰러져 자는 날도 있었다.

귀국해서 모국어의 품으로 돌아오니 말은 신경 쓰지 않아도 잘 들렸다. 하지만 상대방의 말 속에 담긴 속뜻, 속마음을 헤아리느라 머리가 더 아프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말도 있었지만 내 마음을 상하게 한 말도 많았다. 내가 남에게 하는 말도 그렇겠거니 생각하니 말하기조차 힘들다. 말은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어렵고 두렵다.

뉴질랜드에서 잘 안 들리는 영어에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귀국 후 말의 속뜻 헤아리느라 더…

과거 줄기세포 논란으로 우리는 그 실례를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매일 접하는 매체들은 도대체 얼마나 정확하게 내용을 전하는 것일까.
말로써 다른 이를 위무하는 경우보다 말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이 이 세계에는 훨씬 많다. 글과 말로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잘못 표현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 때문인지 책이란 것에 회의를 갖기도 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심지어 한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어도 시점에 따라, 처지에 따라 그 느낌이 얼마나 다르던가.

말과 글이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은 참으로 인간의 모자람을 알도록 하려는 큰 뜻이 아닐까.
그런 회의에 비추어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늘 재미있는 느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성숙한 이해로 만나게 되는 책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최근 다시 읽어본 느낌도 그랬다. 누가 읽어도 그렇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어쩌면 이 책의 내용 그대로가 아닐까 할 정도였다.
주인공 ‘슈호프’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수용된다.

우리 인생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을 겪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책 속 수용소는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고 거기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바로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수용소에서의 하루는 자기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진지한 구도자의 삶과 같았다.
줄곧 비유로 일관하던 책의 후반부에 종교에 대해서 사뭇 진지하게 무려 세 페이지가 넘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발견했다.

말과 글이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른 것은 참으로 인간의 모자람을 알도록 하려는 큰 뜻 아닐까

내가 이제 와서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읽을 때마다 밑줄 치는 부분이 달라진다.
수용소 생활을 다룬 참 평이한 구성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랴,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이 그렇게 흥미진진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적극적으로 추천해 진작 이 책을 읽은 아이들도 재미있어했다.
지금 다섯 번째 읽고 있다는 큰 녀석은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즐거웠노라고 제법 어른스레 이야기한다.

말과 글이 비록 완전한 도구는 아닐지라도 그나마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경우는 이렇게 즐겁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말을 가르치고 또 언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사랑을 주는 따스한 말. 그 말의 뒷면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좋은, 투명한 말만을 주고받는 세상이 오기를 꿈꾸며.

이근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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