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도발이 아니었다

임윤선 피아노학원 원장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승연이는 처음부터 인사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낯설고 어색해서 그런가보다 싶어 친해지기를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의 인사만 받아먹을 뿐이었다. 소통의 부재!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냥 ‘말이 안 통한다’는 소리다.
삼십 명 남짓 되는 아이들과 피아노를 두고 씨름하는 나 사이에도 심심치 않게 소통의 부재가 일어난다. 선생으로서 자존심도 상하고 교육상 이건 아니다 싶어 조심스럽게 “승연아 안녕, 승연이도 선생님께 인사해 봐” 말을 건넸다. 그러자 승연이는 짜증을 내며 째려보는 것이었다.

“안녕, 승연이도 인사해 봐” 하자 째려봐 학원 선생이라 무시하는지 그 속내 몰라 전전긍긍

학원 선생이라고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배우기 싫은 걸 억지로 와서 그런 것인지 도통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근 십 년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여덟 살 소녀의 도발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사태는 점점 나빠졌다. 여전히 승연이는 인사를 건너뛰었고, 어떻게든 맘을 풀어보자고 “예쁜 손으로 피아노 치자” 얼러가며 손을 잡을라치면 손가락에 힘을 잔뜩 쥐고 정색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부턴 다른 피아노학원을 들먹이며 옮겨야겠다고 내 속을 긁어댔다.
성격이 원래 차가운가 싶어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의외의 말들이 쏟아졌다. 웅변학원에선 선생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할 뿐만 아니라, 우연히 그 학원 앞을 지나갈 때도 꼭 들러서 인사를 하고 간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몹시 상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 못되게 구는 것인지…

계속되는 계모 취급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는 결국 남편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다. 십 년이나 아이들을 가르쳐왔는데 해결하지 못하는 게 자존심 상했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승연이의 이유 없는 반항을 조목조목 목이 쉬어라 쏟아내자 남편은 잠시 고심하더니 두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첫째, 승연이가 선생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사제 관계 재정립하기 위해 규칙을 세우고, 어길 시에는 적당한 벌을 줄 것. 둘째, 다른 학원에선 따뜻하게 잘하는 아이니 뭔가 원하는 게 있어 부리는 투정일 수 있으므로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따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가르쳐 볼 것.
그전에 먼저 승연이가 왜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지 알아내야 했다.

그날도 여전히 인사를 길바닥 어딘가에 던지고 온 승연이는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앞에 턱을 괴고 앉았다. 인사를 안 하는 것을 트집 잡아 첫 번째 방안을 쓰자니 내가 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대책을 써보기로 했다. 일단…

한 평 남짓한 방안에서 둘이 있게 되자 순순히 내 지시대로 피아노를 쳐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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