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학생 시위대 설득하다

이수성 前 국무총리

1980년 ‘서울의 봄’ 때 대학생 수만 명이 서울에서 ‘계엄령 해제, 전두환 퇴진’을 외치면서 큰 시위를 벌였는데, 그때 그 자리에 계셨다면서요
당시 서울대 학생처장이었어요. 학교에는 맨날 경찰이 와서 최루탄을 쏴댔고, 학생들은 돌 던지고 그랬지요. 그런데 5월 15일은 학교에 경찰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학생들은 경찰의 제지가 없자 신림동을 지나 서울역까지 그냥 걸어갔어요. 경찰이 하나도 막지 않았어요.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학생들을 따라갔지요.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 시내 대학생들도 경찰의 제지 없이 서울역으로 몰려들었어요. 그때 서울역에 모인 대학생이 한 10만 명이라고 했어요.

서울대 학생처장 때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 모인 10만 학생 시위대 설득, 해산에 결정적 역할해

각 대학의 학생 대표 스물여덟 명은 계속 시위해야 한다는 의견과 해산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려 격론이 벌어졌어요. 대다수가 해산을 반대하며 “남대문으로 쳐들어가자. 중앙청으로 가자”는 거예요. 학생 대표 모임에 참석한 교수는 저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학교에서 입수한 정보는 데모대가 서울 시내 중심부로 들어서면 군이 발포한다는 거였어요. 공수부대까지 투입한다는 얘기도 돌았죠. 나는 학생들에게 “안된다. 큰일 난다” 말렸어요.
전두환 신군부에게 혼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개입할 빌미를 줘서는 안 된다는 거죠. 마침 남대문 근처에서 탈취된 버스가 대치 중인 경찰을 덮치면서 전투경찰 1명이 사망해 학생 시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냉랭했었죠.
서울대 학생회장으로 내 주장에 귀 기울였던 심재철이 “선생님, 조금 나가 계시죠. 저희끼리 의논하겠습니다” 그래요. 학생 대표들이 고민 끝에 전부 해산하고 돌아가자고 결정했어요. 고대 학생회장 신계륜만 빼고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문태갑 국무총리비서실장을 통해 내무장관과 직접 통화했어요. “해산하고 돌아갈 테니 학생들이 다치고 잡혀가는 일 없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렇게 하겠다. 다만 서울 시내 중심부로는 가지 말고 외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해요. 그러겠다고 약속했죠. 그런데 고대생들이 종로를 통해 학교로 가면서 시위해 경찰에 많이 잡혀 들어갔어요.
고대생 중 한 명이 “선생님 한 분 믿고서 해산했는데 잡혀가고 이게 무슨 꼴이냐” 항의하는 거예요. 장관에게 전화해 “대단히 죄송하다. 기왕에 해결하기로 했으니 잡아간 고대생들 다 내달라”고 했더니 장관이 “그 마음 알겠다. 약속은 그쪽에서 어긴 거지만 없는 걸로 하겠다. 다 석방하겠다” 그래서 전부 석방됐어요.

그런데 왜 그다음 날 보안사에 끌려가셨나요?
그날 밤 시위 학생들과 함께 학교로 돌아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왔어요. 학교 식당 음식으로는 비 맞고 온 애들을 다 먹일 수 없었어요. 학교 근처 동네에 가서 라면이고 뭐고 다 사 와서 교직원들에게 부탁해 애들에게 밥을 부랴부랴 해서 먹였지요. 그런데 다음 날 보안사에서 “김대중에게 돈 받아 학생들 데모 자금으로 썼다”며 조사한다고 잡아간 거예요.

시위 학생들과 함께 학교로 돌아와 교직원들에게 부탁해 애들에게 밥을 부랴부랴 해서 먹였지요. 그런데 다음날 보안사에서…

보안사 지하실에 들어가자 전등을 엄청 환하게 켜놨어요. 잠을 못 자게 하는 거지요. 공수부대 군복도 아닌 아주 괴상한 옷을 입은 경상도 사투리 하는 사람들이 두들겨 패는 거예요. “너 경상도 놈인데 김대중이 편들어?” 그러면서… 그때 두들겨 맞아 허리를 심하게 다쳤죠.
한참 지나 오 중령이라는 사람이 와서 “내일 아침 신문에 ‘이수성 교수, 교통사고로 사망’ 이렇게 나가게 다 결정돼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 김대중에게서 데모 자금 받았다고 자백하라는 거지요. 나는 김대중 씨 얼굴도 본 적이 없었어요. 끝까지 사실대로 얘기해도 자백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어요. 고문에 못 이겨 거짓자백하면 수많은 사람이 고초를 당할 걸 생각하니 ‘차라리 자살하는 게 깨끗하겠다’ 맘 먹었어요.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내 아들이에요. 천주교 신자가 되기 전인데도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시겠지’ 했죠. 넥타이도 뺏겨서 손목을 그어 자살하려고 안경의 유리알을 빼고 있는데 옆방 벽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오늘만 참아라!” 환청이 아닌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어요. ‘어차피 죽을 거 오늘 하루만 더 참아보자’ 했죠.
다음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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