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탐욕은 이성을 흐리게 만든다. 탐욕에 눈이 어두우면 판단이 흐려지게 된다. 즉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다.
2000년 닷컴 거품경제가 붕괴된 지 5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주택시장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탐욕에 눈먼 사람들은 거품의 붕괴가 자신들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에서는 그때까지 주택은 투기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주택 가격이 매우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남부지역을 일컫는 선벨트Sun Belt를 중심으로 주택 가격이 숨 가쁘게 오르기 시작했다.
탐욕에 눈먼 은행들은 신용점수가 낮거나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거의 100%까지 주택융자를 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것이 서브프라임적격 미달 대출이었다. 여기에 주택에 투자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번다고 생각한 주택 구매자들이 ‘묻지마 투자’까지 하는 바람에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낮은 금리도 주택 가격의 급등이라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었다. 2000년 초 정보기술 시장이 나빠지자 미국경기는 급냉각하기 시작했다. 주가도 곤두박질쳤다.
이에 당황한 연방준비제도는 통화금융정책을 경기 확대 기조로 바꾸고 연달아 은행 간 기준대출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기준금리가 2001년에 11차례나 인하되었으며 2003년 6월 25일에는 1%로 떨어졌다. 이렇게 금리가 낮아지자 주택 가격뿐만 아니라 주가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갈 수 없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자 주택 가격은 하락했고 주택담보대출이 큰 문제로 다가왔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부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는 쓰나미가 몰아치듯 전 세계의 금융시장을 순식간에 황폐화시켰다.
그것은 마치 맹렬히 타오르는 산불과도 같았다. 불길은 투자은행에서 보험회사와 모기지회사로 그리고 상업은행으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위기가 이제 월스트리트에서 메인스트리트로 번졌고 금융경제에서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범위가 미국에서 전 세계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미국 산업 중 가장 취약한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미 2007년 12월에 경기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미국의 실업률은 2009년 10월에는 10%까지 뛰어올랐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전력을 다해 경제 살리기 작전을 펼쳤다.
중앙은행인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깊어지자 2008년 12월에 기준금리를 0% 수준으로 낮추었다. 미국의 제로금리 수준은 연준이 2015년 12월 16일 기준금리 목표치를 0.25~0.5%로 인상할 때까지 7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다.
또한 연준 100년의 역사에서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양적 완화라는 새로운 금융정책 도구를 세 차례에 걸쳐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이해서 이전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양적 완화라는 통화정책을 택했고 그것은 미국경제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마치 20세기 미국의 국민 시인으로 칭송받는 로버트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길>에서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노래한 것처럼, 새로운 통화정책은 미국경제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온 길의 끝이 종착역인지 아니면 간이역인지는 탐욕이 또다시 이 땅을 휩쓸고 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서울 법대 졸업, 와튼스쿨 박사
한국은행 근무
미네소타대, 플로리다애틀랜틱대 종신교수
플로리다애틀랜틱대 ‘올해의 교수상’ 수상(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