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숙
저는 제주도에 사는 서른여섯 살 직장여성입니다. 이젠 소개팅도 뜸해 ‘그냥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아’ 하며 스스로 위로도 합니다. 그러다 막상 사람을 만나면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결혼에 관한 한 무엇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내가 뭔가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 눈이 너무 높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흰물결 ‘결혼아카데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꼭 가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서울 사는 친구와 동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쯤 그 사람을 소개받았습니다. 공무원으로 저보다 한 살 위였는데, 정말 어디를 봐도 공무원 같아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딱 한 번 본 후 며칠 뒤 밤늦게 전화가 왔는데 받지 않자 곧이어 문자가 왔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네, 딱 한 번 봤는데 사랑한다니… 이 사람 참 예의도 없고, 경솔한 사람인가 보다. 아… 이번에도 아닌가 봐’ 실망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 후 그 사람에게서 여러 번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내 입장을 확실히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아 딱딱하게, 아니 무지 예의 바르게 말했습니다.
“한 번 본 사람에게 전화하기에는 좀 늦은 시간 아니었나요? 그리고 그 문자, 참 마음이 불편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 저…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마음이 살짝 흔들렸습니다. ‘혹시 내가 잘못 봤을지도 모르니깐 결혼아카데미에 갔다 와서 결정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저 그러면 제가 이번 주와 다음 주엔 바빠서요. 서울도 가야 해서요. 그다음 주에요…”
11월 마지막 주, 저는 비행기를 타고 가서 친구와 서초동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갤러리를 지나 강의가 있을 화이트홀에 들어가 무대를 본 순간 야! 탄성이 나왔습니다. ‘이 강의 진짜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는 내내 그동안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내 안의 꿈들이 조금씩 살아났습니다. 눈물을 보이면 좀 그럴 것 같아 계속 참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고민했던 생각을 이미 누군가도 절실히 했구나. 세상살이는 경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며 사람들이 그렇게 몰아붙였던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해도 정말 잘 살 수 있는 거구나. 꿈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확신도 들었습니다. ‘이젠 고민할 필요가 없겠구나. 내 신념대로 결혼하고 살아봐야겠다.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다. 괜찮아, 이젠 정말 괜찮아. 아, 그리고 꼭 결혼해야겠어~’
희망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주도 바람이 참 상쾌했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날 저녁 저는 지난번 만났던 그 사람과 오래 통화했습니다. 그리고 인천 사는 회사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미선 씨~ 나 강의 들으러 지난 주말에 서울 갔다 왔어. 정말 정말 좋은 강의였어. 자기도 꼭 갔다 와~”
“아 그래요? 그거 받으러 서울까지 오셨어요?” “그럼, 받아보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야” “언니, 그러면 다음 강의할 때 꼭 좀 알려주세요. 꼭 가볼게요”
차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