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석
45년도 더 된 일이다. 어느 날 오후 집에 잠깐 들렀는데, 아내가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보고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내가 이렇다니까!” 하면서 끓어 넘치고 있는 냄비 쪽으로 갔다. 다가서서 “당신 요새 무슨 걱정거리 있어?” 하자 한참 뜸을 들이더니 내가 준 월급봉투를 버스에서 소매치기당했다며 “여보 미안해요” 하는 것이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안쓰러워 “왜 당신이 미안해. 그 나쁜 놈을 잡아야지. 내가 찾아올 테니 마음 편히 가져!” 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를 위로하려고 저리 말하는구나’ 하는 눈치였다. 하긴 버스에서 도둑맞은 물건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호언장담하긴 했는데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고민에 빠졌다. 회사로 달려가 여직원에게 지난달 내 월급봉투하고 똑같은 글씨로 써서 손을 타 조금 낡은 것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 봉투에 내역서대로 돈을 넣어서 퇴근했다.
현관에 들어서며 궁금해하는 아내에게 “경찰서에 신고했으니까, 그놈이 잡힐 거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다음 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가 나에게 수화기를 건네며 “경찰서래요” 한다. “…네, 고맙습니다.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여보, 그놈을 잡았대요. 내 다녀오리다” 아내를 안심시키고 집을 나섰다. 실은 경찰서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