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 재워주다 며느리 보고

흰물결이 만난 사람
밀튼 호지 ICOTECH대표

한국 한생 재워주다 한국 방문까지 한 밀튼 부부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는 한국 친구들이 굉장히 많군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어요?

한국 한동대에서 일하던 분이 어느 날 우리 교회에 연락을 했어요. 한동대 로스쿨을 졸업한 한국 학생들이 미국 변호사시험을 치를 동안 몽고메리에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거였죠.
몽고메리가 있는 알라배마 주는 그 당시 미국에서 유일하게 그 지역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은 학생도 변호사시험을 치를 수 있는 주였거든요.
저와 아내는 이미 수년 동안 낯선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머물 수 있도록 집을 내어주곤 했었죠. 사람들이 우리 집에 ‘Hodge 하숙집’이라는 별명도 붙여줬어요. 제 이름이 Milton Hodge거든요.웃음 아내가 요리 솜씨가 좋아 ‘Hodge 하숙집’ 레스토랑 셰프도 훌륭하다며 우스갯소리도 하고요.
한 학생에게 우리 집에서 지내라고 연락을 했어요. 그랬더니 다른 학생들도 같이 데려갈 수 있겠냐는 거예요. 결국 네 명의 한국 학생들이 왔고 그다음 해까지 총 아홉 명의 한국 학생이 거쳐 가게 됐어요.
하이라이트는 저녁 먹기 전 5시쯤이었죠. 아내가 요리하는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학생들이 하나둘 1층으로 내려오기 시작해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쉬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더 즐거웠어요. 한 학생이 1층 부엌에서 아내를 도왔는데 식사 시간이 되면 계단 밑으로 가서 큰 소리로 “온니! 온니!” 불렀어요. 저는 처음에 그게 한 소녀의 별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요.
알고 보니 한국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아빠, 누나, 언니, 이모 이렇게 호칭을 더 자주 부르더라고요.
한국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겠다 특별히 그랬던 것도 아니고 한국인에 대해 거의 몰랐는데 이렇게 한국의 문화, 사람, 음식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한국에 와서 인터뷰까지 하니 신기할 따름이에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기 시작하신 거예요?

1981년 몽고메리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동네 교회를 가게 됐어요. 그 교회 목사님이 꽤 많은 사람들이 임시로 거주할 곳을 찾고 있다며 교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더군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고 하셨죠.
마침 집에 방이 남길래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무감 때문이었는지 책임감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성경을 보면 낯선 사람에게도 환대를 베풀라고 하잖아요. 첫 손님은 어느 딸아이의 엄마였어요. 딸아이가 몽고메리에 있는 병원에서 특별한 치료를 받아야 해 그 엄마가 우리 집에 몇 주 머무르게 되었어요. 그저 놀고 있던 방을 제공했을 뿐인데 너무 고마워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수년 간 집을 열어주게 됐어요. 이런 것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우리 아들들도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낼래?” 하며 편하게 제안하더라고요.웃음 어느새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거죠. ‘프라이버시!’를 외치는 미국에서는 더더욱이 저희를 미쳤다는 듯이 쳐다볼 거예요. 하지만 주님이 이런 일을 통해 저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시고 있어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우리 집에 묵을 때가 많거든요. 손님들과 주로 저녁 식사 때 대화를 많이 나누는데 떠날 때쯤엔 성경이나 기독교에 대해 호기심을 갖더라고요. 나중에 연락해 보면 신자가 된 경우가 꽤 많아요.

낯선 사람들에게 우리 집 내어줘 ‘하숙집’ 별명까지 그저 놀고 있던 방 제공했을 뿐인데 너무 고마워해

Hodge 하숙집’ 덕분에 받은 축복도 있었나요?

2022년도에 처음으로 한국에 여행 왔었어요. 한국에 가면 진지하게 어딜 가봐야겠다 누굴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아무 계획 없이 왔는데 우리 집에서 묵었던 한국인들이 어떻게 저희 여행 소식을 알고 다들 저희 부부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한국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다 만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친구들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죠.웃음 심지어 그 친구들 중 일부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또 보자고 간청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친구들이 우리를 위해 여행 계획을 세워주고 운전도 다 해주며 데리고 다녔어요. 현지인이 아니었다면 결코 갈 수 없거나 알 수도 없었을 장소로 데려다주니 얼마나 저희가 복을 받은 거예요. 2년 전에 한국 여학생이 우리 집에 머물렀었는데 그 부모님이 우리 관광도 시켜주고 여행비까지 다 내주는 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돈 쓸 새가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좋은 일들도 벌어지더라고요. 한국 교회에 한국말 한마디 못 하는 제가 초청을 받아 내가 어떻게 주님을 만났는지 간증하는 시간도 갖게 됐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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