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고독한 판결로!

발행인 윤학

그림 이종상

선배 판사가 함께 점심을 하자며 불러내 반가웠다. 음식점에 도착하자 전 대법관, 서울법대 교수, 유명 후배 변호사가 모여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오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법조인들을 대대적으로 모아 A 법관의 추모식을 열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능한 많은 법조인을 참석시켜야 한다는 데 일치를 보자 그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평소 시사프로 패널로도 곧잘 나오던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홍섭 판사도 모 교수가 책을 써서 사도법관으로 불려졌다.

내가 A 판사를 기리는 책을 펴내 사도법관으로 만들면 되지 않겠냐” 평소 A 법관에 대해 알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성인도 펜대로 만들 수 있다는 그 교수의 사고방식에 실망도 되었다. 한 분이라도 반대할 줄 알았는데 모두가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듯 꽤 고무된 표정이었다. 아니 명망 있는 법조인들이 이런 편법을 쓴다는 말인가! 가슴이 답답해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A 판사가 세상에 특별히 기여한 점이 없어 보이는데 국민들을 속이는 것 아닌가요”

나름 멋진 아이디어를 냈다고 파안대소하던 그 교수가 멈칫했다.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내가 눈치 없는 말을 쏟아내자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불편한 자리를 나오고 말았다.

전 대법관 법대 교수 유명 변호사 모여 법조인들 대대적으로 모아 A법관 추모식 열자고 명분 찾기 시작

그동안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책을 만드는 데 온통 마음을 쏟느라 나는 법조인들의 동향에는 관심이 없었다. 뒤늦게야 그들이 모두 이념적 성향의 OO법 연구회 회원이고 A 판사는 회장을 지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추천에도 그들의 의향이 반영된다는 소문도 들렸다.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사법부 고위직에 오르기도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은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지명을 대통령과 국회에 맡기고 있지 않은가. 진보든 보수든 내 편이 되어줄 법관을 선호하겠구나! 그러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 한쪽으로 기울어질수록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끼는 법관들이 늘어가지 않겠는가. 사법부 고위직에 오를수록 한쪽으로 기울어진 법관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김홍섭 판사는 6·25전쟁 통에 쌀 배급을 몰래 더 타간 여인을 재판하게 되었다. 동료 판사에게 “나도 배고파서 배급을 좀 더 타 먹었는데 같은 죄인끼리 어떻게 재판하느냐”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재판하고, 사형을 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피고인과 검사의 사정을 두루 살핀 덕에 그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지금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하고 있다면? 국민들은 윤석열 탄핵이나 이재명 재판을 보며 지금처럼 편을 갈라 판결하는 사법부를 불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고위법관일수록 공정한 판결을 하리라 기대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연목구어다. 보수 진보의 편가름이 격해질수록 대법관, 헌법재판관 자리는 어느 쪽으로든 치우친 법관들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고 불공정한 판결이 나오기 쉽다.
그동안 국민들은 법관들이 이념 성향에 따라 영장 발부냐 기각이냐, 무죄냐 유죄냐 결정하지 않느냐 하는 의심을 했다. 얼마 전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관들이 똑같은 사안을 두고 둘로 갈라져 완전히 반대의 결정을 하는 것을 보고 진보나 보수라는 이념 성향에 따라 판결한다는 사실을 확인까지 하게 되었다.
법관들의 정치 성향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요즈음 나는 그 점심 식사 자리를 떠올리게 된다. 그 후 A 판사를 사도법관으로 만들어 세를 더 키우려던 계획은 무산된 것 같았다.

‘내가 A판사 기리는 책을 내 사도법관으로 만들면 된다’는 교수의 말에 ‘국민 속이는 거 아닌가요?’

분위기도 모르고 끼어든 내 말에 그들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았을까? 만약 그날 내가 침묵만 했더라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마 그들은 법조인들을 모아 성대히 행사를 치렀을 것이고 법조인들은 그 모임의 세를 보고 더욱 많이 가입했을 것이다.

그러면 사법부에도 그 모임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을 것이며 이념 성향에 따른 판결이 더욱 늘어가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에 대적하는 또 다른 이념적 모임도 자연스레 생겨날 터라 사법부가 더욱 혼돈에 빠져들고 국민들은 더 큰 분열과 반목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바꿀 방법은 없을까? 국회든 대통령이든 내 편 아닌 법관을 지명하면 될 테지만 그것 역시 연목구어다. 보수는 보수 성향 법관을, 진보는 진보 성향 법관을 지명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렇다면 누가 바꿀 수 있는가? 바로 국민들이 바꿔야 한다.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에서 4대4로 정확히 이념 성향에 따라 갈라졌을 때 언론도 국민들도 엄청난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자 다음 탄핵 결정 때부터는 같은 사안을 두고 같은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치권의 영향력보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공정한 재판을 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권에 공정한 재판관을 지명해 달라고 아무리 기대를 해도 그들은 어차피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기대를 하는 것보다 국민들이 깨어나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늘 깨어 여론을 형성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하는 지름길이다.

임명권자 뜻에 반하여, 여론도 거스르면서 정의로운 재판하는 법관들 그 고독한 판결로 민주와 자유 누려

고위법관이 되려는 것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함인데 정치권의 하수인처럼 재판을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한쪽으로 치우친 판결을 내렸을 때 국민들이 그를 고위법관이라며 떠받드는 대신 모리배로 경멸한다면 어느 법관이 그런 잘못된 판결을 하려 들겠는가.
박정희 시대, 전두환 시대에도, 민주화되었다는 오늘에도 얼마나 많은 법관들이 정치권의 의향대로, 아니 한술 더 떠 아첨하며 권력이 의도하지도 못한 판결까지 얼마나 국민들을 절망케 했던가? 국민들이 깨어나지 못해 그들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악독한 판결로 무고한 시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곤 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그들을 ‘대법관님’이니 ‘재판관님’이니 하며 높은 사람으로 떠받들지 않았던가. 요즘에도 다수 야당에, 대통령의 뜻에 맞추려는 법관들에게 아직도 우리가 기대를 하고 있으니…
그런데 간혹 지명권자나 임명권자의 뜻에 반하여, 여론도 거스르면서까지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하는 법관들을 본다.

그 고독한 판결로 민주와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그들을 진정으로 우러러보고 존경할 때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사법부를 이끌어 가려고 할 때 법관다운 법관, 진짜 사도법관이 생겨날 것이다.

발행인 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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