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받으러 갔다가

목경희 수필가

6·25 전후 우리 집 맞은편에 강씨 일가가 살고 있었다. 백발 성성한 시아버지와 강씨 내외, 고만고만한 딸 넷에 갓난 아들 하나 모두 여덟 식구였다.
식구 모두가 무쇠처럼 살갗이 검었다. 나는 그들이 솥공장에 다니기 때문에 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마음은 박속처럼 희고 고왔다. 내가 시장에 가거나 나들이를 가는 날이면 아이도 집도 그들에게 맡기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강씨네가 솥공장을 인수했다며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해 어느 여름날, 강씨네 할아버지가 불쑥 나를 찾아왔다. 낡은 베적삼이 땀에 젖었고 손에 든 지팡이가 몹시 무거워 보였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국수를 삶고 약주를 받아와 정성껏 대접했다.

한숨 돌린 할아버지가 조심조심 말했다. 여름엔 솥공장이 휴업 상태여서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겠기에 염치 불고하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남편이 금융계 월급쟁이로 통보리 네 가마를 쌓아놓는 ‘중산층’은 되었다. 가난한 동네여서 그것이 소문이 난 모양이다.
강씨네 할아버지를 뉘라서 못 믿겠는가? 그저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을 보증 삼고 내 몸같이 소중한 보리 두 가마니를 할아버지께 딸려 보냈다. 가을이 되면 보리 한 가마니에 쌀 열두 말만 받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못 가 할아버지는 남은 두 가마니마저 가져갔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도 깊어갔다. 머지않아 우리 집에도 다다를 소달구지 소리와 골방에 쌓일 쌀가마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그런데 시월이 가고 동짓달이 다 갔는데도 할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내 가슴은 초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강씨네 집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목경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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