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이렇게 재판한다
어느 스님이 길을 가다 전철역 계단에서 여성에게 길을 물었고, 그녀는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그 스님은 감사하다며 불공드릴 일 있으면 자기가 주지로 있는 절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그들은 절에서 자주 만나다 사귀게 되었는데 유부녀인 여성이 남편에게 들킬까 두려워 그만 만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스님은 분노하며 계속 만날 것을 강요했다. 여성이 말을 듣지 않자 집까지 찾아가고 만나 주지 않으면 남편에게 폭로하겠다 협박했다. 실제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마누라 단속 잘하라. 당신 처가 나는 물론 다른 절의 스님과도 놀아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여성 집의 담벼락에 협박글을 써 붙이는 등의 행동으로 기소되었다.
유부녀 협박한 스님에게 “도 닦는 데 장소가 상관 있나? 교도소에서 도 좀 닦아 보라” 판결
이 피고인의 기록에는 조계종 승적 증명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법정에 출입할 때도 항상 합장을 하고 정중히 절을 하며 재판장인 나의 질문에 대답할 때에도 말끝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외곤 했다. 그런데 청소년 시절 절도 전과도 있는 데다, 유부녀를 상대로 치정 사건을 벌이고 협박까지 한 자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참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사진, 녹음 등 증거에 의해 유죄로 판단한 나는 마지막으로 피고인에게 물었다.
“피고인! 피고인은 정말로 스님이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래요? 피고인이 진정한 스님이라면 도를 닦는 데 장소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절에서도 도를 닦을 수도 있고, 길에서도 닦을 수도 있고, 홀로 산에서 닦을 수도 있을 텐데 이번에는 교도소에서 도를 좀 닦아 보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나는 그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실형 선고를 받은 그는 합장도 하지 않고 절도 하지 않고 나무관세음보살도 외지 않고 재판장인 나를 노려보더니 퇴정했다.
하광룡 변호사, 前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