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로 작가
아버지께서 94세에 소천하시고 장례를 치른 후 우리 육남매와 매형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산소에 삥 둘러서서 예배를 드리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나는 이렇게 운을 띄웠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며 남기신 유산은 집안의 평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버님은 감사하게도 아무 재물도 남기지 않고 가셨습니다. 덕분에 재산다툼이나 쓸데없는 잡음 없이 집안이 아주 평화롭고 화기애애하잖아요?”
“하하하…” 웃음이 터졌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둘째 아들인 나는 유독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전역한 다음 날 아버지가 내게 건네신 A4용지 한 장엔 어릴 때부터 나를 키우느라 들어간 금전적 비용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격분하여 종이를 방바닥에 집어 던지고 외쳤다.
“부모가 자식 키우는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채무처럼 주장할 수 있냐고요? 제가 이 집에 양자로 들어왔나요?”
곧바로 집을 나와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
윤송로 작가
미 육군의학연구소,
국립 과학수사연구소,
남가주대학교 분자생물학 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