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도 실패도 지름길 있더라!

오세집 상지원 회장

음악출판, 교육사업을 활발하게 하고 계시던데 어릴 때 꿈이 음악가였나요?

어릴 때 나는 사제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고무신공장에서 일하게 된 아버지 따라 목포로 이사가게 됐지요.
어느 날 성당에 갔는데 수녀님이 어린 나에게 햇빛과 같은 사랑을 주셨어요. 다른 데와 달리 가난한 집 아이라고 차별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부터 오로지 성당 가는 재미로 살았어요.
아버지 반대도 무릅쓰고 신학교까지 들어갔지만 결국은 4년 만에 그만두었어요.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 돈도 벌어야 했고 독신생활에 대한 자신도 없었어요.
신학교를 그만뒀지만 신앙은 변하지 않았어요.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만은 않겠다. 신학교 때 품은 정신을 간직해서 사회생활하면서도 표리일치된 삶을 살겠다’ 결심했지요.
월남에 파병되어 전쟁터에서 죽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행운이 찾아왔어요. 영어문법이나 라틴어는 신학교 때 배워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회화가 약했거든요. 미군들과 살다 보니 대화를 막힘없이 하게 되었어요.
제대하고 나서 미국 고급 백화점 시어스에 취직이 됐어요. 80년대에 월급으로 6~7백만 원을 받았지요. 하지만 뭔가 허전했어요. 가치 있는 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학교 다녔는데 사업이 되던가요?

신학교에서 배운 영어, 라틴어가 악보 만드는 사업에 큰 도움이 됐어요.
나는 사장이라고 가만히 앉아 대우받으며 살지 않았어요. 상지원이 피아노교재와 악보집 600권을 번역했는데, 대부분 제가 직접 번역한 작품입니다. 주위에 보면 오역투성이 책들이 많아요. 저는 번역할 때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스페인과 이태리 대사관에 뜻을 묻고 활용을 물었죠. 상지원 번역이 최고수준이다 보니 지금까지 출판한 책들은 단 한 종도 절판없이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공들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더라고요. 일할 생각에 출근시간이 즐거워요.

미국 고급 백화점에 취직돼 월급 7백만 원씩 받았지만 뭔가 허전해 가치있는 일 해보자!

음악사업 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남북전쟁 때 존 애덤스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내 아들들이 수학 철학 지리 농학을 자유로이 공부하도록, 그리하여 그들의 자녀들이 음악 미술 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치학과 전쟁을 연구해야만 한다”
정치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수단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음악, 미술,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도 의식주가 해결되면 음악에 대한 수요가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처음 어떻게 돈을 벌게 되셨나요?

86년 퇴직금을 털어 사업을 시작했어요. 동생은 악보를 그리는 기술자였고 저는 영업루트를 통해 악보를 수입‧수출하는 무역회사를 한 것이죠.
처음엔 직원도 없었어요. 거래처에서 악보를 원하면 제가 직접 배달해 주었지요. 그러면서 전 세계의 유수한 음악출판사들과 거래를 맺게 되었습니다.
악보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피아노교재 시장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피아노교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조금 배우다가 재미를 못 붙이고 어려워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피아노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줄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알프레드 교수법을 알게 됐어요. 92년부터 교재를 국내에 소개했는데 지금까지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한 거예요.

미국 알프레드 본사 Morton Manus 사장과 함께
미국 알프레드 본사 Morton Manus 사장과 함께
사업에 성공하는 지름길이 있던가요?

어느 성현이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성공”이라고 했어요.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피아노레슨을 안 받아본 어린이가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오래 수업을 받고서도 유학길에 오르면 몇몇 천재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초실력부족을 경험합니다. 그 사람들이 귀국해서는 또다시 과거의 방법으로 제자를 길러내는 악순환이 거듭돼요.
가르치는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능력 있는 아이들까지 중도에 그만둔다고 생각했죠. 알프레드 피아노교재를 피아노교사들에게 보급했습니다. 교사들도 아이들도 기뻐했습니다. 대박이 터졌고, 큰돈을 벌게 됐습니다. 남을 돕겠다는 그 마음에서 지혜가 저절로 생겨났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사업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궁리하면 오히려 사업이 안돼요.

사람들은 다들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왜 실패할까요?
삶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오세집 상지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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