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왕용 산악인
나는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산행은 늘 나에게 무거운 압박이었고 죽음의 그림자와 동행하는 길이었다. 10여 년간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자연에 부대끼면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맛보았다.
이렇게 10년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나는 내가 갈망하던 14개봉 완등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 동안 기록등반을 하면서도 나는 신음하는 히말라야의 참상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2002년 어느 날 날씨가 나빠 등반을 포기하고 일본원정대 캠프에 놀러 갔다. 일본원정대장과 점심을 같이 하는데 캔에 든 깻잎, 장아찌가 눈에 익은 음식이었다.
일본원정대는 현지 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어서 자기 음식은 되도록 적게 가져온다. 그런데 자기네 입맛에 맞는 한국음식이 있어서 맛있게 먹고 있다고 했다.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더니 한국음식이 구덩이에 잔뜩 묻혀있었다고 했다. 전에 다녀간 한국 원정대가 버리고 간 음식이었다.
나도 전에 등반하면서 음식을 버렸는데… 내가 한 일로 인해 한국원정대가 욕을 먹는다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식사 후 일본 캠프를 나오면서 내가 버린 쓰레기를 가져오자는 결심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밥을 먹으니 음식의 부피가 크다. 더구나 우리는 음식쓰레기 뒤처리도 미흡하다. 현지인들에게 돈을 주며 뒤처리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투철하지 않은 그들도 그냥 크레바스에 버리고 만다. 히말라야에 갔을 때 86년 아시안게임 로고가 찍힌 물건이 나온 것을 본 적도 있다.
우리나라 산악팀만 해도 1년에 20팀 넘게 히말라야를 찾을 만큼 세계 산악인들은 시즌마다 히말라야에 몰려든다. 게다가 기록등반원정대는 인적 규모가 크고 한 달 넘게 체류하는데 그들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다. 또 철수할 때는 모두 몸만 빠져나오기 때문에 그동안 누적된 쓰레기로 히말라야의 자연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당장은 얼음에 덮여 음식물이 보이지 않더라도 빙하는 서서히 녹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흔적이 드러난다. 가져간 것을 다시 가져오는 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거대한 히말라야도 인간의 손에 의해 병들고 말 것이다.
그때 나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후에는 더 이상 기록등반은 하지 않으리라. 그 후의 산행은 나로 인해 더럽혀지고 신음하는 히말라야를 깨끗이 하는 데 써야겠다” 라고 다짐했다. 이 다짐이 내 ‘클린마운틴’ 활동의 시작이었다.
클린마운틴은 산행을 하는 것보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시간도 많이 소모되지만 그 노력에 비해 성과도 많이 나지 않아 더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샘과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클린마운틴을 시작했을 때 그것을 지켜본 외국의 세계적인 산악인들은 나이도 어리고 아직 경력도 일천한 나를 대우해 주기 시작했다. 유럽인들도 쓰레기를 많이 버렸다며 프랑스인, 스위스인도 참여해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왔더니 “그런 걸 왜 하느냐” “굳이 나서서 한국산악인을 욕 먹이는 일을 하느냐?” 질타를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