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 이야기
최영희 교사

인생 막장이라 불리던 그 사북을 그린 그림들
‘그 어두운 곳의 이야기겠구나’ 했지만…
오치균. 이제껏 이름도 모르던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갤러리 앞을 지나다가 본 전시 현수막, ‘진달래와 사북의 겨울’에 이끌려서다. 사실 그 전시명은 그리 매력적인 이름은 아니다. 하필 대단한 꽃이 아닌, 진달래. 그리고 어두운 이름 ‘사북’이라니.
나이가 들어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소박한 것, 대단하지 않은 것, 말 없는 것들이 그러하다. 진달래가 그중 하나이다. 어릴 때는 진달래 꽃잎을 따서 먹기도 하고, 꺾기도 했다. 그러나 장미며 백합이며 모란, 목련을 알고부터는 이 수수하고 촌스러운 산중의 꽃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 들어 언제부터인가 이 여리고 순박한 꽃이 제일 예쁘고 귀하게 여겨져 꺽지도 따지도 않는다. 진달래는 해마다 여린 꽃잎으로 언 땅에서 봄을 열어 주며 ‘잘 견디었어. 이제는 밝은 세상이 열려’ 희망을 말하고 있기에…
오치균, 그는 바로 그 꽃을 그려 놓았다. 겨울 잔설이 겨우 녹은 후에 가까운 동네 어둑한 뒷산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미학적 묘사가 아닌 그대로. 헐벗은 나무에 매달린 연분홍 진달래꽃을 그렸다. 나는 그 ‘그대로’에 감동했다. 슬며시 이 낯선 화가가 좋아졌다.
사북. 몇십 년 전 우리에게 어둠으로 상징되던 그 이름. 석탄재로 검게 물든 땅. 인생의 막장이라고 불리던 그곳. 나도 거기에 가 본 일이 있다. 지붕도, 담도, 흙도 심지어는 개울물까지 잿빛이었다. 사람까지도 거의 그 빛깔의 느낌이었다. 검은 탄가루를 뒤집어쓴 그곳에서 나는 내 밝은 삶이 심히 부끄러웠다. 그때 그곳은 참 가엾은 곳이었다. 가슴이 아렸다.
그 사북을 그린 그림들이다. 나는 그림을 보기 전에는 ‘그 불행한 사람들의, 어두운 모습이겠구나’ 흙색, 검은색, 잿빛의 그림이려니 하며 그림 앞에 섰다. 아,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시실 벽을 가득 채운 것은 밝은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이었다. 물론, 그림 전체의 색조는 내가 본 그때의 색을 띠고 있다.
암갈색 혹은 잿빛.
그러나 작가가 본 세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람 하나가 빠듯이 다닐 좁은 골목에 있는 암갈색의 낡은 집.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주 밝은 빨간색 지붕이 보인다. 함석지붕에 빨강 페인트를 칠했으니, 오죽 촌스럽고 유치했으랴. 그러나 그가 그려낸 그 빨간 지붕은 어둡고 좁은 골목에 핀 꽃처럼 아름다웠다. ‘겨울 계단’, 잿빛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주황색 불빛.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 불빛은 내 가슴을 흔들었다. 세상의 어느 불빛이 이리 따뜻하고, 곱고 밝을까.
좁은 ‘골목 어귀’에 눈이 쌓여 있다. 어둡고 좁은 골목을 밝힌 하늘의 은총 같았다. 외등이 비추는 ‘밤 골목’은 밝은 청색 세상이 된다. ‘눈 내리는 밤’의 낮고 작은 집들은 새하얀 눈빛으로 환하고, 작은 가로등 불빛은 동네를 은은히 밝힌다. 집들은 눈을 덮고 평화롭게 잠들어 있다.
‘눈길’, 비탈진 언덕을 올라가는 청색 트럭. 길가 지붕은 빨강으로 마을을 밝힌다. 산 개울은 은은하고 고운 청색으로 흐른다. 나는 예전에 저 물을 분명 잿빛으로 보았는데.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밝은 사북 앞에서 넋을 놓고…
섣부른 동정이나 미화가 아니라 안을 볼 수 있는 내면의 눈을 가진 화가!
그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본 것
‘이른 아침’, 이 마을은 먼동 빛으로 훤히 밝아온다. ‘산속 마을’, 다닥다닥 작은 판잣집들은 푸른 산빛으로 둘러싸여 아늑하고, 집의 담벼락은 빨강으로, 노랑으로, 파랑으로 밝다.
‘大寒’, 추위에 판잣집 지붕의 눈빛은 희게 빛나고, 벽은 초록으로, 진남색으로, 주황으로 곱다. 산골 마을의 큰 추위에 코끝과 뺨이 빨개지고, 손이 꽁꽁 얼어도 그들은 삶의 건강한 빛깔로 겨울을 이겨 가리라.
다닥다닥 이어진 검푸른 색 지붕의 집들.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아주 환한 불빛 하나. 그 안에서 아이는 ‘시험공부’를 한다. 그는 훗날 도회로 나가 휘황한 불빛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곳을 그리워할 것이다. 자신을 길러준 추운, 그러나 건강한 사북을.
집 앞에 핀 노란 해바라기, 좁은 골목 땅바닥에 붙어 핀 민들레, 개나리, 접시꽃, 이 보잘것없는 꽃들은 또 얼마나 귀하게 그려져 있는가. 널어놓은 ‘빨간 내복’, 마당이 따로 없어 집 앞에 내놓은 노란색 ‘장독’ 그 모두가 보석처럼 다가온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밝은 사북 앞에서 넋을 놓았다. 내가 수년 전 본 그 어둠의 땅, 절망의 잿빛으로 보이던 사북을 이리 환한 세상으로 변화시킨 것은 무슨 힘일까.
그 답을 얻은 순간, 내게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섣부른 동정이나 미화가 아니고, 안을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눈을 가진 이에게 바치는 존경심이다.
나는 사북에서 고작 연민을 느끼고, 게다가 나의 알량한 양심의 가책을 은연중에 스스로 칭찬하는 교만함까지 있었는데, 그는…
최영희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