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꺼내 보는 아버지

최은진 유치원장

국민학교 입학 전 어느 날 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학교관사에 살 때 일이다. 세숫대야로 엄마가 피를 받아내는데 한 대야 가득이었다.

밤에 화장실 다닐 때 아버지를 밖에 세워놓고 “아버지 있어? 아버지 있어?”를 몇 번씩 확인하며 볼일을 보던 내가 그 깜깜한 밤에 혼자 걸어가 교장선생님께 “우리 아버지 피 많이 나와요” 전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든지 하는 것도 모르고 빨리 가서 알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교장선생님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우리 딸이 아버지 살렸네!” 하시며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는지 모른다. 그 이후 아버지가 더 좋아지고 어린 마음에 마치 내가 ‘영웅’이라도 된 듯싶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팔 남매 늦둥이로 태어난 나에게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다. 한겨울엔 네 살 터울인 언니랑 따뜻하게 물을 데워서 아버지 발을 한 대야에 한 쪽씩 담그게 하고 우리 맘대로 주무르고 만지고 했었다. 발뒤꿈치가 다 불으면 손톱깎이 칼로 긁어 깨끗하게 닦아드렸다. 언니랑 나랑 누가 더 많이 아버지 발뒤꿈치 굳은살을 깨끗이 하나가 더 중요했지만… 그때 나는 못 하는 게 없다고 여겼던 아버지가 간지럼도 아주 잘 참는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말보다 몸소 행동으로 하셨는데 엄마가 시키는 것이면 뭐든지 다 하셨다. 난 그런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좋았다.

아침마다 신발을 이불로 덮어 따뜻하게 해놓아 “아버지, 신발!” 하면 어느새 가지고 나와

중학생이 되어 읍내학교에 버스로 통학했는데 아버지는 아침마다 내 신발을 이불로 덮어 따뜻하게 해놓으셨다가 버스 타러 나갈 때면 항상 현관에 놓으셨다. 가끔 버스 타러 나가다 신발이 보이지 않을 때 “아버지, 신발!” 하면 어느새 가지고 나오셨다. 해가 일찍 떨어지면 손전등을 들고 항상 버스 내리는 곳까지 나와 기다리셨다. 어느새 나는 정류장에 아버지가 나왔나 안 나왔나 확인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습관이 들었다.

그런데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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