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라면 우리 애 믿고 맡겨

이종락 목사

이종락 목사 부부와 자녀 18명 한자리에 모여

사진 보니 엄청난 대가족이군요! 어떻게 이 많은 아이들을 돌보게 되셨나요?
첫째 딸 지영이를 낳고 6년 만에 아들을 갖게 됐어요. 출산 날, 의사가 “이놈 복을 달고 나왔네” 하길래 봤더니 아기 얼굴에 커다란 혹이 있어요. 이 애가 은만이에요. 마취에서 깨지도 않은 아내를 뒤로하고 큰 병원으로 갔어요. 임파선염이라며 현 상태로만 유지되면 여덟 살엔 제거 수술을 할 수 있대요. 아내에게 비밀로 하다가 한 달 후 데려갔더니 아내는 그 혹 달린 아이를 끌어안고 뽀뽀하며 더 사랑해 주더군요.
그런데 4개월 후, 아기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고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을 쉬지 않았어요. 응급실 바닥에 무릎 꿇고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 비는데 아내가 울면서 저를 붙잡고 흔들더군요. 은만이 심장이 다시 뛴다면서요.
희망도 잠시, 의사는 호흡이 멈춘 사이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돼 깨어나더라도 평생 누워서 지내야 한다고 했어요. 응급상황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어 가게도 정리했는데 병원비는 일주일에 몇백만 원씩 나오는 거예요. 급기야 집까지 팔고 큰딸 지영이는 처가에 맡겼어요. 기댈 곳은 주님밖에 없어 찬송가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를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몰라요. 가깝게 지내던 아주머니가 알려줘 ‘의료 보호증’을 만든 덕분에 병원비가 반의반도 안 되게 줄었어요.

그런 처지에 남의 아이들에게까지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은만이는 코에 삽입 관을 통해 우유를 먹이고 목에 뚫은 구멍으로 30분마다 가래를 뽑아주어야 했죠. 자주 기도가 막히고 발작도 했고 감기에도 금세 폐렴까지 진행돼 1년 중 6개월은 병원에서 지내야 했어요. 참 신기한 것은 곧 죽을 거라던 의사들도 놀랄 정도로 생명줄을 놓지 않더라고요.
답답한 병원에서 말도 못 하는 은만이가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걸 보며 지쳐가던 어느 날, 병실을 나와 무작정 병원을 배회하는데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그 병실 안을 들여다보니 연약한 아이와 엄마가 서로를 붙들고 울고 있었어요.
그 애절함이 제 마음을 파고들면서 지친 내 몸과 마음에만 향해 있던 시선이 바깥을 향하게 된 거죠. 문득 ‘저 사람들도 주님의 위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 아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후원기관에서 은만이의 재활 봉사자를 보내준 덕분에 여유시간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환자로 있는 병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아픈 아이 하나만 바라보며 막막해하던 보호자들은 작은 호의에도 마음을 열었어요. 새로 입원하는 환자들에게 검사실 안내도 해주고, 근처 상점들 중 어느 곳 가격이 싼지, 쉬기 좋은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려줬어요. 어느새 보호자들과 수다 떨 만큼 가까워졌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해도 전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관계가 된 거죠. 은만이 얘기를 하며 복음도 전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오히려 보호자들이 저한테 먼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 왔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저를 ‘기도 아저씨’라고 부르기 시작했죠.웃음

병원을 배회하다 어느 병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내 몸과 마음에만 향해 있던 시선이 바깥으로…

어떻게 남의 장애아들까지 맡게 되셨어요
하루는 병원 복도 끝에서 할머니가 저를 불러요. 아픈 손주를 돌보느라 몇 달째 병원 살이를 하시던 할머니였는데 넋두리를 하셨어요.
시집간 딸이 불쑥 나타나 아기를 맡기고는 연락도 끊겼는데 어느 날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안 보여서 한참을 찾았는데 변소에 빠져 머리까지 들어가 손만 위에서 까딱이더래요. 뇌에 산소 공급이 안 돼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된 것이었어요. 순간 은만이 숨 멈췄던 때가 떠올랐죠.

한참 사연을 얘기하던 할머니가 “예수 믿을 테니까 이 늙은이 부탁 하나만 들어줄라우? 내가 요 며칠 지켜봤는데 아저씨라면 우리 애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거 같아. 지금 당장 해달라는 게 아니라 내가 죽은 다음에…”
예수를 믿겠다는 할머니를 마다할 수가 없어 “예, 그럴게요” 대답했죠. 그날로 할머니는 복음을 듣기 시작했어요.

은만이가 퇴원하면서 할머니와도 만남이 끊어졌는데 어느 날 병원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입원한 아이들과 크리스마스 파티 함께하는 은만이(오른쪽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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