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송로 작가
“Are you Chinese?” “No, We are Korean” “아이고! 이국땅에서 한국인 이웃을 만나니 참 반갑네요” 우리가 미국 어바인 새집에 갓 입주할 때, 옆집 은이네 엄마와 처음 나눈 대화다. 가끔 그 집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불교가 맞긴 한데 자식도 있고 삭발하진 않았으니 대처승인가? 아내와 난 이리저리 추리를 하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원불교 교무님 댁이었다. 남편이 원불교의 높은 직책에 올랐던 고승이셨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고 오랜 세월 도를 닦아 어렵게 두 자녀를 갖게 되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당시 복음에 불타오르던 우리 부부는 은이네 가족을 가끔 교회로 초청하기도 했는데 그 집은 스스럼없이 응해 주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그 집의 집사처럼 필요한 일들을 나서서 흔쾌히 도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분들에게는 타 종교인 교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복 짓는 일이었다. 어느 종교도 모두 다 수용하는 원불교 특유의 포용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느 날 어바인 새 단지에 새로 지은 큰 평수의 주택을 분양하기 시작했다. 은이 엄마는 그 동네 주택을 쉽게 분양받기 위해 우리에게 빠른 온라인 접속을 부탁했다. 그 통에 우리도 분양을 신청했는데 아뿔싸! 두 집 모두 당첨이 되었다. 은이네는 바라던 주택을 분양받게 되었지만, 전혀 생각지 않았던 우리도 나머지 한 채를 차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는 자고 나면 집값이 올라 당첨만 되면 복권이 된 것처럼 생각할 때였다. 은이네는 자금이 준비된 상태여서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사는 집을 팔아야 했고 분양가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좋고 이자도 저렴하여 우리는 간 크게 분양받기로 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기로 맘먹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결국 작은 집에서 나란히 옆집이었던 은이네와 우린 고스란히 동네가 다른 더 큰 주택의 이웃이 되었다. 어바인에 100평이 넘는 3층 집! 마당도 널찍하고 방도 많아서 들르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저히 계산으로는 살 수 없는 그 커다란 집에서 8년 이상을 살았으니… 덕분에 두 아들은 학창시절을 그 집에서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교회의 특별한 행사나 모임이면 우리 집 뒷마당과 커뮤니티 홀에서 100명도 넘게 모일 수 있었고 교인들의 결혼식에도 사용하는 등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던 축복받은 집이었다.
미국 소도시에서 선의로 이웃을 돕다가 졸지에 럭셔리 하우스의 오너가 되었던, 소설 같은 사건이 실제 우리 이민사의 한 토막이 되었다.
윤송로 작가
미 국립 과학수사연구소,
남가주대 분자생물학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