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아내의 사진

이계송

얼마 전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결혼하기 전 내가 찍은 아내의 독사진이었다. 자동차에 기대어 땅을 바라보며 무언가 상념에 잡혀있는 아내,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의 아내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땅을 보며 상념에 잡힌 결혼 전 아내의 독사진 아내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때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으니 아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남자를 잘 선택했을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이 남자는 나의 인생을 어떻게 그려 줄 것인가?” “나는 결혼하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인가?”
그리고 25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5남매의 장남이었기 때문에 아내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온갖 뒷바라지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아이들을 넷이나 낳아 지금도 고생고생 기르며 팍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25년 전의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에게 너무도 죄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내 인생의 족적이나 몰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녀가 꿈꾸던 인생은 적어도 이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나의 무책임이 벌거벗은 채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 한 장의 사진이 나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렇게 처참하게 보여줄 줄이야.
나는 순간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즉시 그 사진을 뽑아 들고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그 사진은 지금 내 사무실에 확대되어 걸려 있다. 나는 날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떠올리곤 한다.

이제 와서 낯 뜨겁고 겸연쩍은 짓이지만 남은 생이라도 아내가 꿈꾸었던 그림의 백분의 일이라도 그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알짜배기 시간은 다 허비하고 짜투리밖에 남지 않은 지금에야 그런 생각을 하다니 별놈 다 보았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다고 무슨 큰 수가 있겠느냐고 냉소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예쁘고 착하고 신선했던 아내의 모습이 모진 세월로 인해서 바뀐 게 아니라 나의 무관심, 나의 불성실, 나의 불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 사진 한 장이 나에게 천둥번개처럼 요동치며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문인 김태길은 <사진첩>이라는 글에서 “사진이라는 물건이 잔인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늙음과 헤어짐에 대한 깨달음을 강요하는 잔인한 증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점차 그것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었다”라고 썼다. 그의 말처럼 그 사진은 ‘잔인한 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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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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