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는 아내와 세 번째는 딸과

박서현 회사원

초등학교 때부터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이런 남편이 되어야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는 TV나 영화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장면처럼 ‘설거지를 많이 도와줘야지’ ‘매일 뽀뽀를 해줘야지’ 정도의 단순한 생각이었다. 결혼과 사랑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나는 10대, 20대를 연애 한번 못 해보고 지냈다. 그런 나의 관심을 단번에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흰물결 결혼아카데미’이다.

서른 살 오빠가 스물넷 여동생에게 ‘결혼아카데미’에 함께 가자고 바로 전화해 참석

대학에 가서도 마음 가는 사람에게 고백 한번 해본 적 없었지만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항상 사랑과 결혼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그러던 중 찾아온 기회였기에 ‘결혼아카데미’가 더 반가웠다. 바로 여동생에게 함께 가자고 전화를 했다. 그렇게 서른 살 오빠와 스물넷 여동생이 함께 ‘결혼아카데미’에 참석했다.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윤 학 변호사의 경험담을 통해 순수한 마음으로 좋은 뜻을 갖고 행하면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강한 믿음도 생겼다. 윤 학 변호사는 강의 중 ‘나를 귀하게 알고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높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알아볼 수 있고 결국 그런 사람과 만나게 된다’고 했다. 너무나 궁금했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내 자신의 성숙을 고민해 왔는데 나는 왜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바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답변은 ‘그런 사람을 만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였다. 구체적인 방법이야 다 다르겠지만… 그래서 ‘흰물결’에서는 ‘미혼남녀 일대일 대화와 만남’이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의 나처럼 막막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1년 뒤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가 좋았지만 반년 동안 해외 생활이 정해져 있었던 나는 만남을 이어가는 게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난생처음 해보는 이성과의 만남인지라 더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마음은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 나의 걱정을 편지로 털어놓았다. “나와 함께 할 수 있겠냐”는 물음에 그녀는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긴 시간 떨어져 자주 만나지도 못했지만 나를 기다려주는 그녀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녀와의 미래를 결심하고 귀국 후 깜짝 프러포즈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되는 혼인교리, 2박 3일간의 ‘약혼자 주말’도 찾아갔다.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며 사랑도 커져갔지만 그것도 부족하다 여긴 나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다시 흰물결 ‘결혼아카데미’에 참석했다. 아내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아카데미에 참석한 것에 놀랐다.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많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강의도 재밌었다고 했다.

결혼 후 아내와 다시 ‘결혼아카데미’에 참석했는데 아내는 많은 미혼남녀 온 것에 놀라

강의가 끝나고 나는 아내에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열심히 강의를 듣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 같이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결혼아카데미’에서는 ‘지혜는 사랑에서 나온다!’는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 후 결혼 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거나 고민이 있을 때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생각해서 결정했다. 결과는 항상 좋았고 둘 다 만족하며 웃을 수 있었다.
결혼 적령기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혼수, 아파트, 자동차와 결혼 준비로 다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물질적인 것에 많이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결혼 준비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가 감사함의 연속이고 행복한데…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그런 대화 중에 미소 지으며 듣고만 있는 내게 친구들이 “근데 너는 참 행복해 보여~”라고 이야기할 때다.
내가 결혼을 위해 물질적으로 준비한 것은 청혼할 때 마련한 반지 하나가 전부였다. 3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가 신혼집이었고 냉장고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듯한 빛바랜 중고품을 얻어왔다. 처가에서 가져온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인터넷을 개통하면서 받은 사은품 TV, 그리고 우리의 가장 비싼 혼수인 20만 원짜리 매트리스로 신혼집을 꾸몄다.

‘결혼아카데미’ 두 번 참석해 큰 수확 얻어 15년 후 청소년 될 딸과 함께 참석하는 꿈도

짐이 많지 않으니 이사를 직접 하기로 했는데, 이삿날 비가 내려 온몸을 다 적시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으로 낑낑대며 이사를 하면서도 우리는 행복했다. 그리고 그녀를 꼭 닮은 딸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 초등학교 때 결심한 ‘설거지하기’와 ‘매일 뽀뽀하기’는 날마다 실천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어떻게 하면 그녀를 웃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우리의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결혼아카데미’를 두 번 참석해 보니 한 번 들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수확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는 것도 있고, 알고도 실천하지 못한 것들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윤 학 변호사가 계속 강의해 주길 바라며 15년 후 청소년이 될 딸과 함께 참석하는 꿈도 꾼다.

박서현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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