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그림에 대해 조금씩 눈이 열리면서 좋은 그림을 보면 갖고 싶었다. 그런 작품이 너무 많았다.
당시 인사동 화랑가에는 인기가 높은 화가들이 있었다. 서양화의 이중섭, 박수근, 이인성, 장욱진, 김환기… 동양화의 이상범, 허백련, 이응로… 그들의 그림을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소 한두 점씩이라도 부지런히 사자니 숨이 찼다.
돈이 모자랐다. 그래서 화랑주인에게 천천히 나누어 주는 것으로 양해를 구하기도 했고, 아주 급한 것은 은행융자를 받아 해결했다. 내가 넉넉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아는 화랑 주인들은 그림값도 되도록 낮추어 주려고 애를 썼다. 또 좀처럼 구하기 힘든 작품이 화랑에 나오면 먼저 연락해 주었다.
연락을 받게 되면 고맙기는 해도 괴로웠다. 견물생심이라고, 마음은 따라가는데 형편이 모두 쫓아갈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좋은 그림을 놓쳤을 때는 밤늦게까지 혼자서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내가 그림을 사기 시작한 것은 개발연대 초기였다. 그때 돈 있는 사람들은 사업을 벌여 돈 벌기와 사업 확장에 바빴고, 일반 시민들은 먹고 살기와 자식 교육에 급급하여 그림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난해 보였다. ‘잘 살아보세’, ‘새벽종이 울렸네’라며 새마을운동 합창을 하는 분위기에서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겠다고 나설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림값이 쌀 수밖에 없었고 나 같은 사람이 이따금씩 화랑에 들르면 대환영을 받았다.
지금 호당 1억 원이 넘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1970년 초만 해도 한 점에 100만 원, 200만 원이면 쉽게 살 수 있었는데, 그래도 그때는 그것이 비싸다고 했다.
사실 그림수집에는 마력 같은 게 있다. 한 점 사기까지가 어렵지, 한 점이라도 자기 돈을 내고 사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한 점 더, 한 점 더, 더 갖고 싶어지는 속성이 있다. 오죽하면 성경에서 욕심이 죄를 잉태한다고 했겠는가. 그러나 욕심이 사람을 끌고 간다. 무엇을 하게 하는 추진력의 에너지 작용을 한다. 세상에 무엇 하나 욕심 없이 이루어진 일이 있던가?
그 무렵 나는 성공철학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다. 카네기, 나폴레온 힐, 조셉 머피 어느 누구의 책에서건 성공성취 제1단계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무언가’라는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되고,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그것이 목표다.
사람마다, 그때그때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돈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관직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명예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돈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막연하게 돈이 있었으면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꼭 필요한 액수와 기한을 정해놓고, 이를테면 10월 31일까지 꼭 손에 넣겠다는 결의로 목표를 세워 마련할 궁리를 하면 그것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한때 일본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자기 애인으로 만들고 싶은 남자의 이름을 써서 그것을 팔뚝에 반창고로 붙이고 다닌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면 그 남자가 어느새 자기에게로 온다고 했다. 자기가 그쪽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간 그런 접근법이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종이에 초점을 맞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가 타게 되지 않는가.
단돈 500만 원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차린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도 대우 초창기 때 자기가 성취하고자 하는 사업 내용과 목표를 머릿속에 영상화시켜 그 되어가는 과정을 늘 추적해 가고는 했는데, 그렇게 한 것들이 나중에 보면 그대로 실현되더라는 말을 했었다.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그 무엇이 자기를 이끌고 가 저절로 이루어지게 한다는 원칙의 또 다른 예증인 셈이다.
꿈같은 얘기 같지만, 결코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경험상 나도 그렇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싶은 그림을 머릿속에 넣고 늘 욕심을 내다 보면, 어느 날 그 그림이 우리 집에 들어와 있었다.
좋다고 생각하는 그림은 내 형편에 언제나 비쌌다. 그런데 싼 그림은 점점 눈에 차지 않았다. 더 좋은 그림을 가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물론 돈만으로 컬렉터가 되지는 않는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 그림에 대한 열정이랄까, 그것이 우선인 것은 사실이다.
조선의 미술을 사랑하여 조선 도자기 등을 수집한 일본의 민예운동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수집 이야기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수집은 돈만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돈이 남아도는 상황에서는 도리어 제대로 된 물건은 모이지 않는다. 없는 형편에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사는 행위야말로 참된 수집이다.
돈만 충분하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러나 금전적 여유가 있어서 모으려 한다면, 추측컨대 수집의 즐거움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물건을 향해 쏟은 사랑 역시도 약해질 것이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거나 돈이 없으니 사지 못한다는 말들은 모두 다 거짓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물건을 꼭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돈이 있으면 오히려 사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건을 사 모으는 데에는 돈도 힘이 될 테지만, 그 이상으로 뜨거운 마음이 힘이다. 돈이 부족하더라도 정열이 그 부족함을 넉넉히 보완해 준다. 아니 돈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것마저도 이끌어준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 모은다고 말들 하지만, 묘하게도 구하는 자에게는 물건 쪽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다“
아마 야나기 무네요시도 수집하면서 늘 돈에 쪼들렸던 모양이다. 돈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돈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좋은 그림은 갖고 싶은데 돈이 없을 때 한계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 자기 한계를 이겨 내는 노력이 곧 괴로운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수집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김용원
서울 법대 졸업, 조선일보 경제부장, 편집국장
대우전자 사장,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