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숙 취업설계사
2007년 어느 날 군청 계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취업설계사 한번 해 볼래요?” 경력단절여성들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했다. 그 짧은 통화 중에 언뜻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알려주어 밥 먹게 하는 일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 60만 원에 6개월 계약직이라고 했으나 근무 조건에는 별 관심 두지 않았다.
남들은 돈 들여서 봉사도 하는데 돈 받으며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니 복도 짓고 덕도 쌓는 인연을 만난 게 아닌가.
두 달 동안 하루 8시간씩 교육을 받았다. 48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단어들의 조합… 자신감이 점점 없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설계사’로 일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밥 먹고 살 수 있도록 직업을 갖게 하기 때문에 ‘나는 밥 짓는 상담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막했다.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는 사업장은 어떤 사업장인지, 또 구직자들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으며,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것을 먼저 해야 할지도 몰랐다.
개점은 했으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사무실은 썰렁했다. 어쩌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빼꼼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사람들마저 반가울 지경이었다.
우선 취업상담센터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홍보 전단지부터 만들었다. 식당에 가면 밥 먹기 전 전단지를 먼저 돌리고 퇴근 후 모임 장소에서도 전단지와 명함을 돌렸다. 선거표 얻으러 다니는 사람마냥…
주말도 없이 구직자가 있는 곳이면 산골 오지라도 찾아갔고, 내 출퇴근 시간은 구직자의 시간에 좌우됐다.
2012년에 순창 풍산 농공단지에 면사를 생산하는 방적공장이 들어왔는데 공장에서 일할 직원 120명을 구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실 만드는 기계 앞에 서서 끊어진 실을 이어주는 일만 하면 되고 무거운 것은 드는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작업 현장을 확인하지 않고는 구직자들을 안내할 수 없었다. 공장을 시험 가동한다는 날 생산현장을 방문했다. 기계 소리와 열기도 만만치 않았으며 특히 실이 만들어지면서 발생하는 솜먼지가 얼굴에 붙어 간지럽히며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깥으로 먼지를 배출하는 최신 기계들도 여러 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생산되는 실 또한 화학사가 아닌 면사이기 때문에 건강을 해칠 염려가 없었다.
순창은 장류를 생산하는 식품 공장이 많다. 가벼운 것은 300g에서 무거운 것은 14kg까지 생산된다. 장류제조회사에서 무거운 것 때문에 힘들었던 여성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것이었다. 나는 방적공장 채용 전단지를 만들어 11개 읍면을 다니며 알렸다. 그 결과 사무실에 이력서가 넘치면서 120명이 채용될 수 있었다.
남의 입에 밥 넣어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호기롭게 잘 할 수 있다고 입사한 사람이 하루 만에 나와 버려 당황한 적도 있었고, 술을 마시고 현장에 들어가 대표로부터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부당해고 당했다고 고발한 사례도 있었다. 그 사건으로 회사가 입은 손해 때문에 나는 대표님 뵐 낯이 없어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강점숙 취업설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