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물결 편집실
요즘 집값이 비싸서 결혼도 할 수 없고 아이를 갖기도 힘들다고 아우성이야. 집 한 채는 마련해야 결혼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결혼하고 나서 고향선배를 만났어. 그 선배가 “야! 너는 왜 집 없이도 결혼했냐?” 그러더라고. “집 한 채는 있어야 아내가 시집와서 편하게 살고, 나를 귀한 사람으로 여겨주는구나 느낄 텐데 넌 그런 책임감도 없냐?”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책임감이 되게 없는 사람 같아. ‘저 형은 다르구나’ 생각했지.
한 10년 있다가 또 그 선배를 만났어. “형 결혼했어?” 물으니 “어떻게 결혼하냐? 집 한 채는 있어야 돼” 그러더라고. 그로부터 또 10년 지났어. 그 선배가 나이 50이 된 거지. 근데 선배가 그때까지도 결혼을 안 했어. “집 한 채는 있어야지” 얘기를 또 하더라고. 지금은 60도 훌쩍 넘었어.
한 3년 전인가 “아~ 형 그래도 결혼해야 될 거 아니야?” 그랬더니 지금도 집이 없어 결혼 못 했다는 얘기를 하더라. 근데 그 선배가 돈을 잘 벌었거든. 아마 결혼했으면 집 한 채도 이미 있었을 거야.
왜 결혼했으면 오히려 집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 요즘 월급 모아 서울 집 한 채 사는 데 20년 걸린다고 하잖아.
돈만 충분히 있다면 집을 살 수 있을까? 집값이 싸다면 집 살 수 있을까?
아내가 막 셋째를 낳았을 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았어. 그때 막 집값이 내려갈 때거든. 그때 내가 살고 싶던 빌라도 집값이 꽤 많이 내린 거야. 그런데 아무도 안 사. 왜? 사람들은 값이 더 내려가 버릴까 봐 못 사는 거야.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줄 알아. 집이 8억이라면 내가 8억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집값이 계속 내려가고 있으면 못 사. 7억으로 내려가면 1억이 손해잖아. 6억으로 내려가 버리면 완전히 망해버리잖아. 그러니까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거지.
집값이 올라가고 있을 때는 어때? 지금까지는 올랐지만 내일부터는 내려갈까 봐 또 못 사.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집이든 물건이든 돈 이상의 무슨 가치가 있어야 살 수 있어.
나는 당시 집값이 계속 떨어지는 분위기인데도 과감히 집을 샀어. 왜?
나도 뱃속 아기가 심하게 아플 수도 있다고 진단받았을 때, 우리 가족이 거지가 되어 길에 나 앉아도 좋으니 아기가 건강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제서야 뭐가 더 높은 가치인지 확 와닿았지.
흰물결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