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노랗게 물든 숲속에
길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었습니다
한 길을 택해야만 하는 안타까움에
한참 서있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아침 바다에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처럼 타오르던 일본경제가 1990년대 초 갑자기 개기일식을 만난 듯 빛을 잃기 시작했다. 이런 일본경제의 내리막길은 흔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거의 20년 동안 이어졌다.
일본의 부동산 과열이 한창이었을 때는 도쿄의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살 수 있고, 일왕의 궁전 땅을 팔면 캘리포니아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1980년부터 천정부지로 치솟던 일본의 부동산값이 수직으로 하락했다. 일본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일본 은행들은 주식이나 땅을 담보로 대대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제공했다.
그런데 담보가치가 떨어지자 차입자들은 그들이 빌린 차입금에 대한 지급불능에 빠졌고, 차입자의 지급불능은 은행의 대출 능력을 크게 위축시켰다.
은행들의 신용경색은 기업들이 은행으로부터 투자자금을 빌리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기업투자를 크게 위축시켰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는데 이는 일본의 수출을 크게 증가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일본의 자동차, 전자제품 등이 파죽지세로 미국시장을 휩쓸면서 미국 산업을 초토화시켰다.
미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미국, 일본, 서독 등 당사국들이 엔화를 1달러당 120엔대로 유지하자는 협정을 맺게 된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결국 일본의 수출경쟁력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책금리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자금수요가 떨어지는 상황이라 시장금리도 떨어져 경제는 저금리의 덫에 걸리게 되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낮은 금리의 덫에 걸리는 것을 ‘유동성 함정’이라고 한다.
물가가 계속 하락하자 소비자들은 앞으로 물건값이 더 떨어지겠다는 생각에 상품구입을 뒤로 미뤘으며 기업들은 이윤을 보지 못하자 생산을 더욱 줄였다. 경기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민간소비를 일으키기 위해 세금 감면이나 정부지출을 확대해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민간차입을 통해 재정지출을 크게 늘린 터라, 만약 세금을 감면하거나 정부지출을 늘리면 이미 과도한 공공부채를 더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했다. 이로써 정부지출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마음대로 정부 지출을 늘릴 수 없는 정책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출구가 막힌 듯 보일 때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민간에서 돈을 쓰지 않을 때는…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