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화 의사
40년째 살고 있는 동네 단골 이발관에 갔더니 ‘100주년 기념’ 사인이 걸려있었다. 거울 옆에 아들 사진이 보여 내 머리를 다듬던 5대 주인에게 물었다. “네 아들이 6대를 이어나갈 건가?” “누가 알아? 자기가 알아서 정하겠지” 그에게 언제 이발사가 되기로 결정했냐고 묻자 씨익 웃는다.
“사실 고등학교 때 나는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이발사라고 밝히는 것이 부끄러웠어. 그리고 ‘나는 돈 잘 버는 사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지.
나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갔어. 경영학과와 MBA를 마치고 월스트리트에 뛰어들어서 신나게 돈을 벌었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도 맘껏 해봤어. 세계 구석구석 여행도 가고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비싼 술을 마시면서 이쁜 여자들 속에 뒹굴기도 하고… 그렇게 사업은 계속 잘되어 갔고 집에 돈을 넘쳐나게 가지고 왔어. 하지만 정작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할 여유는 없더라. 항상 긴장과 경쟁 속에 지내야 했어.
경쟁 속의 긴장을 풀기 위해서 틈만 나면 비행기에 올라 스카이다이빙을 했는데 목표 지점에 잘 착륙하는 그 순간의 아찔한 황홀감에 취하곤 했어.
그런데 그런 황홀감을 맛볼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매며 돈을 뿌려댔어. 남는 것은 더 큰 것을 바라는 마음뿐이었지. 심지어 젊은 여자 두 명을 함께 데리고 놀아도 봤지만 내 마음을 달래주는 평화가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낙하산을 펴야 하는 고도에 다다랐는데 이대로 그냥 추락하는 게 더 편안할 것 같다는 마음이 스치더라고.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