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피난길 피아노 콩쿨

신수정 피아니스트

<리즈 콩쿨> 심사위원들과 함께

조성진, 임효선… 기라성 같은 피아니스트들을 키워내셨잖아요
사실 한 인물이 나오기 위해 선생이나 부모만이 아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한결같이 뒷받침 해주거든요. 그분들은 그 예술가가 1등 할 걸 기대하고 도와주는 것이 절대 아니에요.
조성진의 첫 스승 박숙련 선생이 참 정성껏 성진이를 가르쳤고, 저에게 도와달라 해서 인연이 됐어요. 성진이가 <쇼팽콩쿨>에 나가던 날, 그날을 잊지 못해요. 유튜브로 정말 밤새도록 보았어요. 발표는 또 왜 그렇게 늦게 하는지…웃음 워낙 뛰어난 능력자예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성진이의 부모예요. 성진이가 그 유명한 콩쿨에서 1등 했을 때도 엄마가 아버지한테 전화 걸어 1등 했다고만 전하고는 언론에 절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런 상황에 부모도 겸손하기 참 힘들거든요.

그 옛날에 어떻게 피아노를 시작했나요?
일제강점기 때는 학교에서 일본 아이가 꼭 1등이 되어야 해서 실제로 1등인 엄마에게는 1등 상을 절대 주지 않았대요.
그런 데다 일본 학생들한테는 피아노를 가르쳐주면서 한국 학생들한테는 풍금만 가르쳤으니 엄마는 그런 게 한이 맺힌 거예요. 자식한테라도 더 나은 교육을 시켜야된다는 생각이 박혔던 거죠.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꼭 피아니스트를 생각하신 건 아니에요. 그 당시에 피아니스트라는 개념도 없었을 때거든요. 그래도 뭐를 해야 한다는 마음은 있으니까 악착같이 피아노를 시킨 거죠.
마침 1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옥천여중 교장으로 전근 가셔서 그 학교 관사에서 살았어요. 그 학교에 피아노가 원조 물자로 왔는데 해골도 있는 컴컴한 실습실에 놔뒀어요.

6·25 전쟁 때문에 피난 온 선생님이 조그만 셋방을 얻어서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그 전쟁통에도 애들이 바글바글…

피아노 치러 가기가 너무 무서워서 바이엘 48번까지 배우는데 참 힘들었어요. 그 바이엘 첫 페이지에 오른손이 거꾸로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하도 못 해서 엄마가 지금까지도 그게 기억에 남는대요. 웃음
3학년 때 엄마는 청주에서 유치원 원장을 하셨어요. 그 유치원에 피아노가 생겨 피아노를 계속 배우게 됐죠. 그때 청주 시내에서 피아노 치던 또래가 세 명밖에 없었는데 참 운이 좋았어요.

그렇게 피아노를 막 시작해서 한창 배울 때인데 6·25가 터졌다면서요
여덟 살 때예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엄마가 만삭이라 아버지가 나를 서울 출장에 데려갔어요. 아버지가 집으로 전화를 해 보니까 엄마가 막내아들을 낳은 거예요. 아버지가 아들을 빨리 보고 싶다고 예정보다 일찍 내려온 게 6·25 날이었어요. 운이 좋았지요. 서울에 더 있었으면 이산가족 됐을 뻔했잖아요.
우리가 아침에 기차를 타고 천안까지 왔는데 군인들이 다 내리라고 해요. 그제야 전쟁이 난 걸 알고 피난 가는데 엄마는 아파서 소달구지 타고 여덟 살인 나는 남동생 아기를 업었어요.
그렇게 삼십 리나 갔는데 피난 가도 하나도 나은 게 없는 거예요. 총소리는 들리고 인민군은 왔다 갔다 하고. 결국 청주로 다시 돌아왔어요.
돌아오면서 들판을 건너올 때 죽은 군인들 기억이 지금도 선명해요. 폭탄이 떨어져 옆집에 불나면 우리는 마루 밑으로 들어가고 B29 폭격도 겪었어요. 내가 그런 걸 기억할 수 있는 아마 마지막 세대일 거예요.

그럼 피아노도 더 이상 배우기 어려우셨겠어요
그게 참 희한해요. 6·25 전쟁 때문에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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