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원준 카피라이터
대학 졸업 후 입대한 나는 제대와 동시에 취업을 해야만 했다. 말년휴가를 나와서는 온 동네를 다니며 구인 전단을 모아 빨간 사인펜으로 체크했지만 문의 전화할 용기조차 없었다.
제대만 하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줄 알았는데 정작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뿐…
제대 첫날,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침 6시 기상에 익숙한 나는 거짓말처럼 눈이 떠졌다. 다시 잘까 고민했지만 내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을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주섬주섬 일어나 동네목욕탕으로 향했다.
평일 새벽이라 그런지 손님은 나뿐이었다. 군대의 묵은때를 벗겨내고 싶어 온탕과 열탕, 훈증사우나와 습식사우나를 오가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냉탕에서는 풍덩 물장구까지 치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장 내일부터는 뭐하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중 손님 한 명이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운동이라도 한 듯한 건장한 체구의 남자는 이상한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탕도 많은데 하필이면 같은 탕으로 들어온 것도, 내가 돌려놓은 모래시계를 마음대로 다시 돌려놓는 것도 무척 거슬렸다.
계속되는 미묘한 신경전이 싫어 내 자리로 돌아와 보니 내 때수건과 일회용 샴푸, 린스가 없는 것이었다. 목욕탕 안에는 나와 그 덩치 큰 남자 단둘이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딱 한 명뿐. 그 남자가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간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때수건과 일회용 샴푸, 린스.
“아저씨, 그거 제 거 아니에요?” 소리치듯 물어봤지만 무력행사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