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노점여인

노윤화 前 산수갑산 회장

영천 하양의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어요. 시아버님이 사찰을 몇 개씩이나 세우신 불교신자세요. 집에는 노상 스님들이 와 계시고…
하루는 애기를 업고 밖에 나갔는데 수녀님 한 분이 걸어오세요. 성당 앞을 지나가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흘러나오면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곤 했거든요. ‘천주교에 한번 가봤으면’ 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잘됐다 싶어 성당에 나가고 싶다고 털어놓았지요.
수녀님이 곧장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오시는데, 저는 시아버님이 무서워서 부엌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수녀님의 설득에 시아버님이 “며느리 종교까지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시더라고요. 그 소리에 나는 너무 좋아 부엌에서 아이를 업고 혼자서 난리가 났어요.웃음 그때부터 우리 시아버님께 잘 보이려고 집안일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사 그릇도 박박 닦고.웃음
남편이 얼마 뒤 육군본부의 좋은 자리로 옮기게 됐어요. 군에 있으니까 부대의 사령관 부인, 중앙정보부장 사모가 나를 어찌나 예뻐해 주는지… 주일에도 군인 부인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게 재미있으니까 성당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하루는 꿈에 신부님이 나보고 자꾸 기도하라는 거예요. 또 한 번은 꿈에 신부님이 전부 회색 옷을 입고 장례 행렬을 하는데, 내 딸을 들고서 사람들이 막 오더라고요. 그래도 무슨 일 있으랴 하고는 이튿날도 부인들과 또 놀았어요.

오후 2시쯤, 집에서 밥하는 아이하고 군인 하나가 와서 대뜸 “사모님, 큰일 났습니다”
물난리가 크게 나서 딸하고 어머니하고 떠내려가서 죽었다는 거예요. 다섯 살짜리 우리 딸, 아녜스가요…
다른 시체들은 못 찾고 있는데 우리 딸은 어떻게 건져서 곱게 씻겨가지고 앰뷸런스에 실어 왔더라고요. 그런데 나는 왠지 아이를 보기 싫었어요. 주님의 섭리가 오묘한 것을 그때는 몰랐던 거예요. 하느님이 까불지 말고 당신 옆에 오라고 했는데 몰랐어요. 그 뒤로는 일하다가도 신부님이 “가자!” 하시면 따라갔어요.

직원이 퇴근시간이 되면 주문받은 것도 던지고 가버려

한 신부님의 어머님이 저를 딸처럼 대해주셨는데 “미국으로 들어와라” 하셔요. 잠깐 살아본다 생각하고 따라 들어갔는데 제 노동허가비자까지 다 신청해 놓으신 거예요. 그때 한국에서 가져간 돈이 있었지만 자식들 생각에 그 돈을 건드리지 않고 샐러드바에 가서 야채 써는 것부터 시작했지요. 한국에서 에어로빅하고, 좋은 거 먹고, 만날 명품이나 사고 돌아다니다가…웃음
튀김 가게에서도 일했는데 그 주인이 아주 임금이 박했어요. 그러니 사람이 와도 안 붙어 있고 금방 나가요. 그런데 나는 추우나 더우나 항상 30분 전에 가서 앉아 있거든요. 보통 다른 직원들은 가게 문 다 열어 놓으면 그때야 들어와요.
내가 “너희는 심보가 나쁘다. 너희가 빨리 퇴근할 때도 있지 않느냐? 우리가 이만큼 돈을 받으면 일찍 와서 일할 때도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랬더니 뒤에서 내 욕들을 하더라고요.
영어를 꽤 하는 한국 여자가 있었어요. 퇴근 시간이 되면 자기가 주문받은 것도 던져 버리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주문 밀려 있을 때 몇 개 더 해주고 가면 네가 나빠지냐?” 했더니 “영어 하나도 못 하는 늙은 것이 나한테 막 가르친다” 그러는 겁니다. 다른 여자들은 적당히 시간 때우고 마는데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흘러도 종일 기름에 새우 튀기지요. 그러니 손님이 많아져 나를 매니저까지 시켜주었어요. 영어도 못 하는데…
그때 손이 다 망가졌어요. 보통 5파운드짜리 얼음 속에 있는 새우를 5박스씩 까는 겁니다. 그것도 그냥 훌렁 까는 게 아니고, 새우 꽁지는 놔두고 껍질만 빼내는데 당기는 게 힘이 들어요.
그러다 어느 날 식당 안이 막 빙글빙글 돌더니 정신을 잃었어요. 앰뷸런스에 실려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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