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삶의 틀! 동생은 삶의 터!
곽영훈 도시계획가, 건축가
중학교 2학년 때,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 형이 “야~ 우리가 커서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않겠냐” 했다. “형은 뭐 하려고요?” 물으니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 아니냐. 그때를 위해서 헌법이라는 삶의 틀을 만들고 싶다. 서울 법대 가서 법학자가 될 거야” 했다. 그런 후 형은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형과 다른 분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법 제도로 ‘삶의 틀’을 만든다고 하니 나는 ‘삶의 터’를 만들면 좋겠다 싶었다.
나는 사람이 사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 아름다운 도시!” 그 답에 형이 어찌나 기뻐하던지… “너 MIT 가야 해”
나는 자라는 동안 내 주위에 드리워 있던 나무들을 잊지 못한다. 고향 집 살구나무, 남산 뒷동산, 명륜동 대추나무… 모두가 때가 되면 하나하나 열매를 맺는 우주의 신비였다. 때로는 내게 울타리였고, 지붕이었다.
삶의 터전을 이리저리 옮기는 동안 나는 어렴풋이 한 나라 사람들이 사는 터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 터전이 6·25 때 폐허가 되는 것, 그 폐허가 결국 사람들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그 터전을 다시 아름답게 돌려놓고 싶었다. 그러면 사람들의 삶까지 다시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사람이 함께 어울려서 사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했다.
그 답에 형이 어찌나 기뻐하던지… 그러면서 “너 그거 준비하려면 MIT 가야 해” 그땐 MIT가 뭔지 잘 몰랐다. 형도 잘은 모르는 것 같았다.
고1 때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라”라고 했다. 형이 한 말과 똑같은 말을 저 사람이 하네? 놀랐고 ‘케네디’에 대해 궁금했다.
2년 뒤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케네디를 직접 만나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 적십자사가 백악관과 협력하여 세계 각국의 젊은 학생 지도자들을 자국으로 초청하는 ‘VISTAVisit of International Students to America’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젊은이들 간 교류를 통해 서로 화합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 행사에 갈 한국 대표 선발 심사에서 내가 뽑혔다. 전국에서 단 두 명을 선발했는데… 중학생 때부터 형을 쫓아 적십자에서 양로원 위문, 파고다공원 쓰레기 치우기 등을 꾸준히 하며 적십자 반장까지 맡은 덕이었을 것이다.
그날부터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한국과 미국, 태평양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며 영화에서나 보던 시카고, 워싱턴, 뉴욕을 그려 보곤 했다.
드디어 도착한 미국. 도심과 건물, 숲과 나무들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그는 “여기 모인 사람들이 우정을 키워 세계 평화를 이룩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
그때 한강은 죽은 강이었다. 남산의 광경이 다 없어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
수년이 흘러 나는 MIT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게 됐고 환경설계와 조경 분야 세계 1위 회사인 SDDA에 취직까지 되어 현장에서 신나게 일했다. 잘 배워 한국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꿈은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드디어 서울로 돌아왔을 때 한강은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는 죽은 강이었다. 산업화가 본격화되고 서울 인구가 늘어나면서 연탄재, 수박 껍질, 부서진 가구 등 생활 쓰레기와 공장 폐수가 뒤섞여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한강 변에서 보면 남산의 기세가 한강까지 뻗쳐 예쁜 구릉을 이루고 있다. 남산 남측 언덕은 파리의 몽마르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 위치에 있지만, 그 언덕을 파서 대규모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이 다 없어지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 안타까움이 쌓여갔다.
한강! 서울의 허리를 가로지르고 있는 생명줄. 그 생명줄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해보자! 당시 한강은 서울의 남단 변두리 정도로 인식할 때였다. 한강 전체 도면을 5천분의 1로 축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