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민 신부
안식년 막바지에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큰 도시에서 옷 가게를 하고 있는 고종사촌들을 만났는데 참으로 즐겁고 유쾌했다.
사촌 형은 가게를 시작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장사가 잘되지 않아 절망스러운 마음에 하느님께 기도하며 투정도 많이 부렸다고 했다.
“주님, 제발 손님 좀 보내주세요. 저희가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뚱뚱한 흑인 여성이 신발을 보러 들어왔다. 겉으로는 웃는 척했지만 심드렁한 마음으로 응대하고 있는데, 의자에 앉아 양말을 벗으려고 하는 그녀가 너무 뚱뚱해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으이그, 살 좀 빼지’ 하며 도와주려고 그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양말을 벗겨주었는데, 시커멓고 지저분한 그녀의 발이 마치 예수님 발처럼 느껴지며 불결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발을 살짝 어루만지며 발이 참 예쁘다 칭찬하고 신발을 신겨주었더니 그 손님이 “참 친절하시군요. 신발도 마음에 들어요” 하며 세 켤레나 샀다. 하루에 한 켤레 팔기도 힘들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손님 누구에게나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양말을 벗겨주고 신발을 신겨주니 모두들 감동하고 칭찬하면서 신발과 더불어 옷까지 사 가더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저 무릎 한 번 꿇었을 뿐인데 이렇게 큰 반응이 올 줄이야. 아, 주님께서 손님을 계속 보내주셨는데 정성껏 맞이하지 못하고 다 쫓아내면서 푸념만 늘어놓았구나’
그 후 형님은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수없이 많은 예수님 발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아주 건실한 가게를 두 개나 운영하고 있다.
오세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