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회사원
1980년 5·18 당시 나는 광주 한서유업 공장장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사장이 서울 출장 중이었다. 계엄군이 광주를 고립시켜 전화도 안 되고 교통마저 두절되었다. 그러나 그 난리통에도 농민들이 손수레나 트럭을 끌고 와서 매일 납품을 해 우유 가공 일은 하루라도 멈출 수 없었다.
그 비상 상황에서 200명 직원은 내 입만 바라봤다. 나는 모든 직원에게 정상 출근하라고 했다. 고장 난 자전거를 수리해 집부터 공장이 있던 광주 외곽의 양산동까지 출근하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다.
하루는 시민군 수십 명이 트럭을 몰고 와 시민군에게 우유를 지원하라고 했다. 그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말이 좋아 지원이지 공짜로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유는 내 것이 아니라 회사 재산이고, 나는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총이 두려웠지만 속으로 심호흡을 몇 번 크게 하니 용기가 생겼다. 마치 공장 견학 온 사람들에게 브리핑하듯 우유라는 식품의 특성부터 보관 방법까지 시민군들에게 설명하고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축산물 가공처리법에 의해 멸균된 우유는 5일 내 소비해야 한다. 지금 난리통이라 판로도 막혔으니 우유를 줄
시민군 수십 명 총 들고 와 공짜로
우유 달라고 “이름 안 적으면 줄
수 없다” 하니 빈손으로 되돌아가오는 차 두 팔로 막아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 줬는지 위에 보고해야 한다. 이름 적고 가져가라. 그러지 않으면 줄 수 없다” 시민군들은 한참 투덜투덜하더니 빈손으로 되돌아갔다.
며칠 뒤 다른 시민군들이 떼로 몰려왔다. 이번에는 한층 강경한 자세였다. 정상적인 판매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출대장에 시민군 대표의 서명을 받고 원하는 만큼 우유를 내주었다.
5월 27일 사태가 마무리되고 도청 업무가 정상화되자 나는 축정과를 찾아가 담당자에게 말했다.
“5·18 때문에 축산 농가들이 원유를 제때 팔지 못했고, 우리는 우유 가공을 못했다. 우리와 계약을 맺은 250여 축산 농가의 원유대를 보상해라. 우리 회사도 큰 손해를 봤다. 회사 손해와 시민군들이 가져간 우윳값도 물어내라”
도청 담당자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 또 손해 액수는 어떻게 계산하냐?”고 따졌다. 나는 준비한 장부를 내밀었다. “젖소가 한 번 젖을 짜면 얼마나 나오는지 여기에 다 있다. 원유 단가는 유지방율에 따라 다른데 그 단가표도 여기에 있다. 계산해 보면 금액이 나온다. 시민군이 가져간 우유량도 불출자 서명이 다 되어있다. 확인해 보라” 그렇게 손해 배상금 전액을 받아냈다.
사람들은 내 배짱에 놀랐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5·18 때 도시락과 김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셨던 어머니도 날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밤마다 계엄군이 탱크로 밀고 올라갈 거라는 소문과 새벽마다 들리는 총성에 잠도 못 잤다. 우리에게 피난 가라고들 권했는데, 어머니는 “6·25 때도 공산군의 강요로 밥을 해주면서도 피난을 안 갔다”면서 꿈쩍도 안 하셨다. 그런데 내가 우윳값을 받아내겠다고 하니 “사람 죽는 판에 우윳값 받으러 댕기냐?” 나무라셨다.
내가 돈을 받아냈다는 소문이 퍼지자 딸기농사, 배추농사를 망친 농민들도 도청을 찾아가 손해를 배상받았다.
잊히지 않는 일화가 또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도청에서 회사 트럭 수십 대를 모두 도청 앞으로 집결시키라는 전화가 왔다. 회사 재산을 손 놓고 빼앗길 수 없어 나는 전화기에 대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
며칠 뒤 시민군 서명 받고 우유 내
줘 도청 정상화 되자 회사 장부
내밀고 우윳값 전액 배상 받아내
는 도청 책임자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냐. 목포로 차량들을 보낸 지가 언제인데. 당신 도청 직원 맞냐?” 그러고는 급히 직원들을 불러 임곡에 있는 회사 농장으로 모든 트럭을 보내 숨겼다.
나는 누가 5·18 얘기만 하면 나름대로 할 말은 있었어도 듣고만 있었다. 모두가 총 들고 싸웠고, 희생당했고, 고통받았다는데 나는 회사 지키기에 바빴으니 인간미 없다고 할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5·18 같은 상황에서도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상황이 달라졌다고 회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망하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지금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이제는 광주 시민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당했는가만을 말하는 것을 넘어설 때가 되었다. 그때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봐야 한다. 그것이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가 아닐까.
이명재 회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