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윤학
도쿄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창밖으로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었다. 아빠는 자전거 앞뒤에 아이 한 명씩, 젊은 엄마도 한 아이를 태우고 씽씽 달린다. 무더운 여름인데도 젊은 부부와 세 아이가 싱그럽게 다가왔다. 휴일 아침에 길을 나서면 동네 공원에서 아빠와 달리기도 하고 공놀이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젊은 엄마들… 그림처럼 아름다운 광경이다. 식당에 가도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식사를 하는 정겨운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서울 우리 동네에서는 커피숍과 레스토랑, 거리마다 젊은 남녀들이 넘쳐나는데 아이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뭔지 모를 부러움이 밀려온다. 일본 출산율 1.26명, 한국 출산율 0.65명이라는 숫자가 가슴에 와닿는다. 무엇이 이렇게 두 나라를 다르게 만들고 있을까 궁금했다. 두 나라의 저출산 대책을 들여다봤다. 젊은 층의 결혼과 출산 기피라는 저출산의 원인에 대한 인식은 같았다. 지난 20년 동안 저출산 대책으로 일본은 600조 원, 우리는 380조가량을 썼다. 인구수를 고려해 보면 우리가 예산을 더 쓴 것이다. 양육비, 교육비 지원 같은 정책도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현금성 위주의 정부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컸다. 반면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현금지원 위주의 정부 정책만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의 밑바닥에 있는 이런 의식의 차이가 출산율을 가르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어릴 적 우리 집은 8남매였다. 시골에서 한약방을 하는 아버지 수입으로는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어서 과외 같은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천자문을 가르쳐주었고 형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옆에 앉아 있는 나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쳐 주었다. 그뿐인가. 형과 누나가 읽다 만 책에는 발명가나 성공한 사업가, 행복한 가장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쓰여 있었다. 그걸 읽기만 하면 공부하는 법, 돈 버는 길, 결혼 잘하는 법도 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해도 부서진 가구 손질, 자전거 타는 법, 손님 맞는 자세, 장부 정리, 생선 비늘 벗기는 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요즘 학원에서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최고급 과외를 받고 자란 셈이다. 그런데 이런 과외는 정부의 지원 없이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 형제 중 대학 교육까지 받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모두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고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어릴 적 형제들끼리 서로 도와주고 부대끼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법을 습득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내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 딸은 엄마가 방에 붙여 놓은 한글과 숫자 카드로 한글과 수를 익혔는데 동생들에게 그걸 똑같이 가르쳐 주고 학교 숙제도 돌봐 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면 늘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요즘 ‘집이 없어서, 양육비와 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사회도 그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젊은 시절 고향 선배에게 왜 미혼이냐고 물었더니 “집 한 채는 있어야 결혼하지”라고 대답했다. 40대 때도 50대 때도 선배를 만나면 ‘집 한 채’ 타령이더니 60을 훌쩍 넘긴 그 선배는 지금도 혼자다. 결혼이 집보다 훨씬 중요한 일 아닌가. 젊은 시절 돈도 꽤 잘 벌었던 그 선배가 결혼했더라면 이미 집도 생겼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을 낮게, 덜 중요한 것을 높게 보며 살다 보면 삶이 뒤죽박죽된다. 높은 것을 높게, 낮은 것을 낮게 볼 수 있어야 삶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국민들은 결혼도 출산도 우선 돈이 있어야 하고, 국가가 더 많은 예산을 써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생각을 집단적으로 갖고 있다. 결혼과 출산이 돈보다 훨씬 귀한 가치라는 의식만 가지면 누구나 결혼과 출산에 힘을 쏟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딸은 어렵게 로스쿨에 들어갔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로스쿨 공부보다 결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친구와 결혼했다. 로스쿨 재학 중 아이가 생겼고 졸업 후 둘째도 생겼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당연히 변호사 시험공부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합격’ 규정에 걸려 영구히 시험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셋째를 임신했다. 딸은 변호사 시험에 더 이상 응시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면서도 아이들 얘기만 나오면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나는 딸을 볼 때마다 말한다. “넌 변호사 자격 30개 얻은 것보다 더 큰 일을 해냈어” 그런데 ‘임신과 육아 기간을 5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헌법소원이 기각됐다. 저출산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라고 떠들면서도 우리나라 최고 재판관들마저 가치의 높낮이도 구분 못하니… 더 이상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혼과 출산은 단언컨대 국가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아니, 방해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 전환에 달려 있다. 돈과 집과 아이들 과외만 높은 가치로 보는 한 그 어떤 정책을 펴도, 예산을 쏟아부어도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우리 동네에 아이들 소리가 없는 것은 일본인들보다 결혼과 출산을 덜 중요하게 여기고 돈과 집과 과외를 더 중시하기 때문은 아닐까. 너와 나의 집부터 결혼과 출산의 가치를 하늘처럼 높게 받든다면 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날 것이다.
오늘, 청첩장 두 개를 받았다. 흰물결 결혼아카데미 강의를 들은 후 ‘일대일 대화와 만남’ 프로그램에서 배우자를 만난 젊은이들이 보내온 결혼 소식이다. 14년 전 나만이라도 결혼의 중요성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줘야겠다며 시작했는데, 벌써 수천 명이 다녀갔고, 수백 명의 결혼 소식이 들려온다. 무엇이 진정 중요한 것인가. 아이들 손을 잡고 행복하게 걷는 가족들을 서울 거리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
발행인 윤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