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으로 집 사다

선의를 선의로!

흰물결 편집실

유치원에서 한 남자아이가 여섯 살 딸에게 관심이 있어서 장난을 쳤어. 딸은 그걸 공격으로 느끼더라고. 사람들의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이 선의로 다가가도 그 선의를 제대로 못 받아들이고 악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늘 자기를 방어하려고 하니깐. 근데 상대방이 악의를 갖고 다가가도 그걸 선의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 살아보니 선의로 잘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굉장히 큰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더라.

잔금 치러야 등기 넘겨준다 배웠는데… 첫 집 외상으로 사 두 번째 집주인도 외상으로

나도 집을 살 때 매도인의 제안을 선의로 받아들인 덕분에 외상으로 집을 산 적이 있어. 법을 공부할 때 반드시 잔금까지 치러야 등기를 넘겨준다고 배웠는데 현실에서 외상으로 집을 사는 일이 벌어진 거야.(웃음)

내가 호기심이 많다 보니 쉬는 날이면 아내랑 서울 시내를 구석구석 잘 돌아다녔거든. 방배동을 지나는데 영화에서나 볼법한 전원주택 단지가 있더라고. 서울 시내에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그런 곳이 어디 있겠어? 깜짝 놀랐어. 단지 내부를 보고 싶은데 차단봉이 있잖아. 못 들어가니까 궁금해서 잠이 안 오는 거야. 가만 생각해 보니 부동산하고 같이 가면 볼 수가 있잖아. 부동산과 바로 약속을 잡았지.

봄날, 햇볕이 쫙 내리쬐는데 주택 단지가 너무 아름다운 거야. 나는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그런 데서 늘 살고 싶었어. 근데 돈이 없잖아. 그때 살던 집 팔아봤자 3억 나오는데 당시 그 빌라는 8억이라고 했어. 그러니 꿈도 못 꿨지.

어느 날 그 주택 주인이 전화를 했어. 나보고 사무실에 놀러 가도 되냐는 거야. 나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으니깐 좋다고 했지. 사무실에 와서는 나한테 한 달에 얼마씩 버냐고 꼬치꼬치 묻는 거야. 난 솔직하게 얼마씩 번다고 털어놨지. 자기는 대형 회계법인 대표인데도 그렇게 못 번다며 어떻게 그렇게 버냐면서 깜짝 놀라. 나도 회계사에 대해서 궁금하니까 ‘어떻게 운영하냐’ 이것저것 묻고 그랬거든. 대화가 참 잘 통하더라고. 그 후로도 몇 번 놀러 오시는 거야. 그런데 올 때마다 그 양반이 더 꼬치꼬치 묻는 거야. 아파트 몇 평에 살고 있고, 그거 값이 얼마나 되고. 그러더니 어느 날 “윤 변호사, 우리 집 사세요. 융자 좀 받고, 지금 가지고 있는 집 팔고, 그렇게 하고도 부족한 몇억은 내가 외상으로 줄게요”

이분이 다른 사업을 하면서 빚을 몇억 졌대. 그 빌라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지. 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하더라고. 외상으로 해준 다음 나머지 집값도 차근차근 갚아도 된다는 거야. 집을 8억에 내놨는데 내가 부르는 가격 그대로 팔겠다며 집값을 정하라는 거야. 내가 한 7억 정도를 얘기해도 계약하겠더라고.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분이 궁지에 몰렸는데 내가 7억을 제시하면 내 마음이 불편할 거 같아. 그래서 7억 4천을 얘기하니까 “계약서 씁시다!” 그래. ‘에이, 7억 불러도 됐을 텐데’ 이런 생각이 조금도 안 들었어. 그렇게 나는 그분을 만나서 그 좋은 집을 사게 된 거야.

젊은이들 집 사는 거 도와주려고 “얼마 모았냐” 물으면 프라이버시라며 공격해

어떤 사람과 만나느냐, 그 사람과 어떻게 만나느냐가 참 중요한 거지. 그 사람도 맨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으니까 내 사무실에도 찾아왔겠지. 그런데다 얼마 버는지 솔직하게 얘기를 하니까 그걸 토대로 아이디어가 생겨. ‘아, 이 사람에게 이런 아이디어를 주면 내 집도 팔 수 있고, 저 사람도 이 집을 살 수 있겠구나’ 하고 그 아이디어를 알려준 거지.
요즘 나도 젊은이들이 집 사기 어렵다고 하니깐 도와주고 싶어 “얼마 모았냐. 월급은 얼마 받고 있냐?”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보거든. 그럼 그걸 그냥 선의로 받아들여서 처음 만났는데도 편하게 말해주는 젊은이도 있어. 그런데 대부분은 ‘프라이버시인데 왜 그런 것까지 물어보지? 왜 내가 저 사람한테 오픈해야 하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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