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이 흐르는 집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거실 밖 조그만 정원에 자리한 꽃들이 계절마다 번갈아 고개를 내민다. 나이가 들면 자연을 찾는다더니 틈날 때마다 물주고 들여다보는 게 큰 재미다. 세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야밤에 들어와도 이들의 향기 속으로 들어오면 언제나 오감이 다시 열린다.

다뉴브 강변길 색칠한 거대한 소각장이 예술 작품으로 소각장 본질은 같은데 외형 하나로

삭막한 아파트 옥상에 화초를 가꾸는 아이디어를 낸 건축화가 훈데르트바서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자연에 잠시 들린 손님이다. 자연에 예의를 갖춰라” “식물이 자랄 땅을 빼앗아 집을 지었으니 옥상과 집 안에 나무들의 공간을 마련해야한다” 주장해 세상에 큰 파문을 던졌던 괴짜 예술인이다. 직선은 거부하고 곡선을 고집한 그의 작품세계는 도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주의와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직선 위주의 기능주의 건축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그는 “착한 곡선을 회복하지 않으면 인간 세계의 미래는 없다” 선언했다.

아파트는 직선의 건축이다. 한국만큼 직선의 문화를 빨리 접목했던 나라도 없다. 뭔가 색다른 근원을 찾아보고 싶어 비엔나로 떠났다.

오스트리아의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다뉴브 강변길 초록이 짙었다. 도심지가 보이기 시작하자 알록달록 색칠한 거대한 소각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훈데르트바서가 쓰레기 처리장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예술 작품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전 세계 환경 관련 공무원들의 순례코스 1번이다. 혐오라는 것도 참 피상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본질은 똑같은데도 외형 하나로 사람들의 시선이 180도 달라지다니…

호텔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찾았다. 벽면이 물결처럼 휘어지고 흘러내리는 듯하다. 창문 모양은 제각각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멀리 지나다니는 행인들도 바깥에서 창문을 보고는 ‘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겠구나’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창문을 개성 있게 건축한 것이다.

훈데르트바서는 2차 대전 때 외가 친척 69명을 잃었다. 어린 시절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새싹을 보고 자연주의 정신를 떠올렸다. ‘훈데르트바서’도 본인이 직접 지은 이름인데 백 개의 물줄기라는 뜻으로 자연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는 평생 ‘건축치료의 길’을 고집했다.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인간이 숨을 쉬고 살아야 하는 제3의 피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행인들도 바깥에서 창문만 보고도 ‘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고 있겠구나’ 느낄 수 있어야

그는 ‘환경운동 하자’며 그럴듯하게 말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보여주는 진정한 환경운동가, 건축가, 화가의 삶을 살았다. “신은 서두르지 않았다”라는 말로 80년째 시공 중인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건축디자이너 가우디, “신은 직선을 만들지 않았다” 말하는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 건축. 이러한 느림과 곡선의 미학이 21세기 건축역사를 주도하고 있다. 이 거장들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야 하는 나에게 고백한다.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인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것만이 인간의 위대한 깨달음이 될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前 MBC 기자, YTN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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