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돈이 없어서라고?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잃은 것과 얻은 것을
놓친 것과 잡은 것을
비교해보니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것이
별로 없구나.
내가 아노니
얼마나 많은 날들을 헛되이 보냈던고.
실패는 승리로 둔갑할지 모르고
썰물이 가장 낮게 빠지면
밀물이 밀려오나니.
헨리 롱펠로 잃은 것과 얻은 것
세계 경제는 수 세기 동안 크고 작은 경제위기를 끊임없이 겪어왔다. 1930년대 대공황, 70년대 석유파동, 2000년 IT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경제위기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탐욕이 가져온 배설물일까?
전에는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역사는 경제위기에 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경제위기의 싹을 키웠다고 가르쳐준다. 인간의 탐욕에는 주기가 없다. 탐욕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라도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 미국을 황폐화시킨 대공황도, 세계를 뒤흔든 글로벌 경제위기도 모두 사람들이 합리적인 이윤의 범위를 넘어 탐욕을 추구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들이다.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열풍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기거품 현상이다. 1636년 네덜란드에서 어떤 사람이 몇십 달러밖에 되지 않는 튤립의 돌연변이 품종을 100달러에 사서 200달러에 팔았다. 이것을 본 이웃이 이번에는 200달러에 사서 300달러에 팔기 시작했다. 이러한 튤립 열풍은 1년 만에 튤립 가격을 몇십 달러에서 8,000달러까지 치솟게 만들었다.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튤립의 투매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8,000달러에 거래되었던 튤립의 가격은 순식간에 70달러까지 폭락했다.
인간의 탐욕과 합리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합리적 경제주체도 탐욕적인 투기에 가담할 수 있는가? 경제학에서 ‘합리성’을 경쟁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이용하여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성향으로 이해한다면 탐욕은 합리성과 반드시 배치된다고는 볼 수 없다. 경제활동에 탐욕이 끼어들 때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 그리고 각 경제주체들은 그 왜곡된 가격을 합리적 시장에서 결정된 균형가격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다.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는 개인은 자신만은 거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집단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행동할 때 거기에 거품이 끼게 된다. 이것이 투기이다.
투기는 궁극적으로는 가격의 상승에서 오는 차익을 노리는 행위이다. 가격은 자연재해 같은 공급충격에 의해서 상품의 공급이 줄어들거나 돈이 넘쳐나서 상품 수요가 늘어나는 경우에 상승한다. 이와 같이 투기는 화폐의 등장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화폐는 소지하기 쉽고 거래하기도 간편하기 때문에 돈이 탐욕과 결합될 때 투기는 증폭된다. 화폐가 생기기 전에 사람들은 자기가 생산한 물품을 다른 물품과 교환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예컨대 닭을 가진 사람이 쌀을 구하려면 자기가 가진 닭을 쌀로 바꿔줄 사람을 찾아야 했다. 화폐의 출현과 더불어 이러한 ‘필요의 이중일치’는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돈을 수시로 사용하면서 화폐의 사용빈도 또는 유통속도가 빨라졌고, 이는 물가를 더욱 빨리 상승시켰다. 예를 들어 닭을 가진 사람이 5만 원을 주고 농부로부터 쌀 한 가마를 사면, 농부는 곧바로 5만 원을 주고 옷 한 벌을 살 수 있고, 옷 장수는 곧바로 5만 원을 주고 쌀 한 가마를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닭에 대한 수요는 없어지고, 쌀에 대한 수요가 두 배로 는 셈이다. 사람들이 쌀을 더 많이 사려고 한다면, 외부 충격이 없다고 해도 쌀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최근 경제위기는 돈이 없어서 발생했다기보다는 돈을 지나치게 사랑해서 발생한 것이다. 주택 가치가 두 배 이상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은행으로부터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돈을 빌려서 집에 투자하는 것,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투자)은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보였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탐욕적인 투기는 처음에는 성공으로 보일지라도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탐욕적인 투기로부터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계산해 보면 남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롱펠로는 ‘잃은 것과 얻은 것’에서 이 진리를 일깨워준다.
윤기향 경제학과 교수
서울법대 졸, 와튼스쿨 박사
플로리다애틀랜틱대 종신교수
2001년 ‘올해의 교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