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아를 흔쾌히 장애아들과 함께?

김서령 교사

비바람이 불어 꽤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유아원에 다니는 둘째를 데려오기 위해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댔다.
장애‧비장애 통합 학교들은 등, 하교 시 지정된 문 앞쪽으로 차를 줄지어 세우고 학부모가 차 안에서 기다리게 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차 안의 학부모를 확인하고 한 명씩 차에 태워준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나오자마자 본인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 얼굴을 확인하지 않으면 속상해하는 아들을 위해 일찌감치 차를 세우고 유치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곤 한다.
오늘같이 비 오는 으스스한 날에는 나도 다른 부모들처럼 차 안에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싶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엄마를 애타게 찾는 시기도 이때뿐 아닌가’ 생각하며 이내 우산을 펼쳐 들고 학교 옆문으로 갔다.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는 옷깃을 여미며 문 앞을 서성이는데 아이들 한 무리가 나왔다. 선생님이 한 아이 부모의 차를 찾아내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아이들이 우산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다 옷은 또 얼마나 얇게 입었는지! 겨울이라도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미국 사람들이라 그런가…
애꿎은 미국 엄마들을 머릿속으로 탓하고 있는데, 그중 한 여자아이가 한 남자아이 손을 꼭 잡고는 내 쪽 작은 나무 아래로 왔다.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다른 손으로는 비 맞지 말라고 먼저 모자 씌워주던 꼬마 아가씨

한눈에 봐도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최소 6개월은 빨라 보였다. 머리에 큰 리본 핀을 꽂은, 확연히 의젓한 여자아이는 자기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작고 왜소한 그 남자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의식하더니 다른 한 손으로 남자아이 자켓에 있는 모자를 들어 올려 머리에 씌워주었다. 남자아이는 친구가 모자를 씌워주는지 마는지 멍하니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여전히 친구 손을 잡은 채 한 손으로 자신의 자켓 모자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자가 가방 사이로 들어가 있어 아이는 쉽게 찾지 못하고 계속 더듬거리기만 한다. 비가 오는데 자기 모자를 쓰기도 전에 친구 모자부터 찾아 씌워주는 꼬마의 마음씨가 참 곱다. 얼른 다가가 가방 사이에 끼어 있는 모자를 꺼내 씌워주자 그 꼬마 아가씨는 환하게 웃으며 “Thank you!” 한다.
다시 몇 발짝 물러나 그 두 아이를 응시하며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뿔싸! 내 손에 큼지막한 우산이 들려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얇은 옷차림에 비까지 맞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그 엄마들 탓만 하고, 자기보다 어리숙한 친구의 모자를 먼저 씌워주는 네 살짜리 꼬마 아가씨의 고운 마음에 감탄만 했었다니…

순간 우산을 들고 있던 내 손이 너무 부끄러워 다시 슬슬 두 아이 곁으로 가 슬쩍 우산을 기울였다. 우산이 자기들 쪽으로 기울여지는 것을 느낀 큰 리본의 꼬마 아가씨는 이내 다시 “Thank you!”를 똑 부러지게 말하더니 금세 비가 온다는 둥 재잘재잘 내게 말을 건다.
그렇게 꼬마 아가씨와 몇 마디 나누고 있으니 우산 밑으로 어느새 다른 꼬마 아가씨가 쏙 들어왔다. 예쁜 검정 구두를 보여주며 구두가 다 젖었다고 씩 웃는 것을 보니 구두를 보호하려 우산 속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곧 둘째도 나왔지만 이 꼬마 친구들을 배신하고 갈 수가 없어 내게 달려드는 둘째도 우산 속으로 밀어 넣었다.
드디어 선생님이 리본 아가씨가 돌보던 작은 남자아이를 데려가며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한다. 꼬마 아가씨는 선생님 손을 잡고 가는 그 아이의 뒤에서 연신 잘 가라고 인사를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렇게 우산 속 꼬마 친구들이 한 명씩 떠나고, 둘째와 나는 평소보다 좀 늦게 학교를 떠났다.

둘째가 다니고 있는 이 학교는 성장 발달이 또래보다 좀 느리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유치원 생활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2년 전부터 준비시켜 주는 곳이다. 준비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또래 롤모델’을 사용하는 것이다.

발달지체 아이들을 위해 정상적인 자녀들을 흔쾌히 통합 학교로 보내준 부모님들

일부러 좀 더 나이가 많고 의젓한 비장애 아이들을 뽑아 성장 발달이 느리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그 롤모델 친구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통합시켜 가르친다.
둘째가 언어와 사회성 발달이 느려 이 학교를 추천받았을 때 잠시 망설였었다. 왠지 내 아이가 더디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김서령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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