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대가 만들어내는 가감과 첨삭이 더 매력적인 역사로 자리잡기도 한다. 시대 상황이나 시각에 따라 역사적 인물은 달라질 수 있다.
봄이 오는 고베항은 따뜻한 남풍으로 가득했다. 메이지 유신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개혁이 숨차던 현장에는 가이엔타이海援隊, 사설해군 기념물이 깔끔한 모습으로 재등장해 있었다. 막부 말기에 료마를 중심으로 사설 해군과 무역회사로 활동한 가이엔타이는 일본 해군의 시작점이다.
료마가 헌신했던 가이엔타이를 중심으로 근대 일본은 유신 후 20년 만에 군함 20척을 건조했다. 이것은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개항을 받아들인 후 초단기간에 만들어진 해군력은 이름도 없던 일본을 제국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일본이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수만 명의 한신대지진 희생자를 새겨 넣은 추모관 옆으로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아 청년 료마의 발자취가 살아있는 가이엔타이 기념물을 돌아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은 계속 이어진다.
일본 근대화의 전기를 마련해 준 영웅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관찰하기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다. 역사는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된다.
료마는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메이지유신 100년 만에 일본의 국민적 영웅으로 각색되었던 것이다. 1962년부터 4년 동안 <산케이 신문>에 연재된 8,000매의 원고는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혁명기의 풍운아였지만 19세기 말 당시에는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수줍음을 잘 타고 시골 출신이라는 점, 놀라운 검술과 뛰어난 조정력으로 사츠마, 조슈, 도사번이 가담한 막부 반란군 삿조동맹을 성사시켜 유신이 무혈혁명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점, 일본 근대화의 기초가 되었지만 32세의 젊은 나이에 살해되어 생을 마친 인생 역정은 스토리텔링의 완결판이 되기에 충분했다.
료마는 도사번을 벗어나 낭인이 되는 탈번 무사다. 오직 혈기 하나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길을 가고자 했던 인물이다. 사이고 다카모리처럼 반란군 대장도 아니었고 가쓰 가이슈처럼 막부정권의 고위직을 지낸 적도 없다. 이름 없는 낭인이었지만 막부와 번 간의 내전을 피하고 사무라이 왕국을 개항으로 이끌어 부국이 되는 방법을 고민했다.
도쿠가와 막부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한 대정봉환大政奉還을 통해 메이지 유신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료마의 설득과 협상이 낳은 작품이다. 규슈의 나가사키에서 고베까지 선박으로만 이동하던 때에 선상에서 고뇌를 거듭한 끝에 구상해 낸 선중팔책船中八策은 일본 근대역사의 중요한 대목이다. 참의원과 중의원의 양원제, 차별 없는 인재 등용, 헌법 제정, 만국공법 준수로 서구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자는 제안들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일본은 현재까지 료마의 구상을 골격으로 유지하고 있다. 인생 경험이 일천한 20대 후반 청년의 제안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부분이다.
시바 료타로는 불후의 소설 <료마가 간다>를 써서 잊혀 가는 역사적 인물 료마를 현실로 초대했다. 그를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강대국으로 도약해 나가는 일본의 꿈을 담아냈다.
이 소설은 NHK 대하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청년의 야망과 헌신이 극적으로 그려진 이 작품으로 료마는 단숨에 일본 최고의 정치가 반열에 올랐다. 2000년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지난 천 년 동안의 위대한 정치가 순위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메이지 유신은 개화기 청년들의 애국심과 결단이 빚어낸 성공작이다. 공익에 헌신하고자 했던 젊은 선각자들이 유신의 물줄기를 잡아냈다. 후세들은 그들을 관찰하면서 정확한 평가를 내리고자 했다. 치밀한 분석과 따뜻한 시선이 유지되어야 가능한 영역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
前 MBC 기자, YTN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