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한 사람의 힘

발행인 윤 학

그림 이종상

하굣길 그날도 섬 아이들은 나를 슬프게 했다. 갓 전학 간 나를 ‘해남 물감자’라며 놀리는 것이었다. 해남에서 물감자가 전학 왔다는 선생님 한마디에 나는 ‘해남 물감자’가 되어 버렸다.
들판 한가운데 쭉 뻗은 신작로만 걷느라 심심했던 아이들은 하늘 가득 울려 퍼지도록 “해남~물감자~”를 외쳐댔다. 아이들의 합창에 눌려 땅만 보고 걷던 나를 찌르고 달아나는 녀석도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 그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빙 둘러서더니 이리저리 나를 밀치거나 주먹을 휘둘렀다. 집성촌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가 사촌 육촌 간이라 내 편 네 편이 분명했다. 그 어디에도 내 편은 없었다.
그때 울먹이듯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너희들 왜 이러냐?” 안타까워하던 그의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자 아이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보다 다수의 편에 서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아니 그른 것을 보고 울분을 토해내는 그가 있어 행복했다.
박춘금! 그 후에도 아이들은 놀리다가도 그의 눈치를 살폈다. 박춘금 한 사람이 하굣길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외로울 때 그의 2층집 다락방에 찾아가면 그는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해남~ 물감자~” 떼지어 놀리며 빙 둘러서더니 이리저리 주먹 휘둘러. 그때 “너희들 왜 이러냐?”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 섬을 벗어나면 내 편 네 편에 따라 사는 사람보다 박춘금 같은 친구가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옳고 그르냐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누가 무슨 말만 해도 누가 무슨 글만 써도 내 편인가 네 편인가부터 살핀 후 지지하거나 비난했다.
그런데 내 편 네 편에 젖은 사람들은 경제활동도 편 가르기로 선택했다. 다수가 돈이 되는 일이라고 떠들면 결국 손해볼 것이 뻔한데도 그 다수의 길로 몰려가곤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겠는가.
그렇게 다수 쪽에 선 사람들은 정직해야 돈을 번다는 소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웃으며 네 편이라 생각한다. 그 소수 중 누군가 돈을 벌면 그 진실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고 뭔가 편법을 썼을 거라고 헐뜯는다. 그러나 식당을 하건 옷가게를 하건 의사를 하건 옳은 길로 가면 돈을 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몇 년 전 박춘금이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 찾아갔다. 그는 가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전히 너무 잘 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다수로 뭉쳐 누군가를 괴롭히는 데 신바람을 냈던 그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요즘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뭉쳤다. 의료인력이 부족해 16시간씩 중노동을 한다고 불평했으면서도, 노인 인구가 늘어 의료수요가 폭발할 것을 알면서도 의료인 증원을 27년 전부터 거부하고 있다. 의료인들 주장엔 분명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도 많다. 교수 인력 부족, 피부과, 성형외과로 빠져나가 필수 의료인력은 충원되지 않을 거라는 염려…

하지만 의료계의 주장은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진실 앞에서 빛을 잃는다.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데 뭉쳐 중환자들을 눈앞에 두고 떠난다니… 내 편만 많으면 무얼 해도 된다는 세상 분위기에 젖어 살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국민들은 지금 박춘금 같은 의사 한 사람이 간절하다.
누구든 결국 환자가 된다. 의료인들도 노인이 되고 중환자가 된다. 그때 의사가 부족해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내 편 네 편은 궁극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편’ ‘네 편’ 뭉칠수록 중간지대가 선거 결과 결정. 다수가 아니라 나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 잊지 말자

그런데 정치인들은 편 가름으로 먹고산다. 그들은 ‘네 편’을 공격할수록 ‘내 편’의 환호를 받아 힘이 커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야당 지지자들은 아무리 여당이 옳은 일을 해도 비난하고, 여당 지지자들은 아무리 야당이 옳은 일을 해도 비난하지 않던가. 그 결과 우리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편 가르고 비난 잘하는 야비한 정치인만 갖게 되었다. 그런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가 엉망이라 힘들다며 정치인 탓만 한다. 어릴 때부터 편 가르기만 잘하는 바로 우리를 탓해야 하진 않을까. 정치인에게 편 가르지 말라는 말은 아예 하지도 말자!
선거가 다가온다. 내 편에 투표할 것인가? 아니면 내 편을 뛰어넘어 투표할 것인가?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문제다. 누군가를 ‘네 편’으로 배척만 하려는 사람이 잘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런데 비난과 적대감 하나만을 무기로 선거에 뛰어든 정치인이 있다. 그런 정치인에게 내가 열광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다수가 된 정치인들이 하나로 뭉쳐 어떤 괴상한 일을 벌여왔는지… ‘내 편’이 많아질수록 다수가 된 정치인들은 소수가 된 ‘네 편’을 괴롭히는 일에만 더욱 더 몰두할 것 아닌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여당도 야당도 독주할 수 없도록 어느 한쪽이 거대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나라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투표!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내 편’ ‘네 편’으로 뭉치면 뭉칠수록 중간지대 사람들이 선거 결과를 결정한다. 다수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나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내가 잘 살아가는 길은 편 가름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내 친구 박춘금같은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병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번 4월 선거에서도… 그 한 사람이 많아져야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

발행인 윤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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