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 만난 얘기 하다가
곽영훈 도시계획가
워싱턴 유학 시절, 미국 적십자사 국제 담당국장인 도로시 타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뉴욕에서 열리는 적십자 연례 회의에서 연설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그런 큰 행사에서 연설할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무슨 내용으로 해야 할지 난감했다. 영어도 서툴렀다. 하지만 연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행사 당일, 뉴욕 힐튼호텔은 적십자 대표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적십자사가 기획한 가 기획한 프로그램 ‘비스타’를 통해 케네디 대통령과 세계 각국 젊은 대표들을 만났던 일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얘기했다. 전 세계 인류를 ‘한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며 그것이 우리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어린 연사의 말에 관중들은 큰 박수로 화답을 해주었는데 정작 나는 긴장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회의장을 나서는데 처음 보는 예쁜 미국 여학생이 다가와 연설을 감명 깊게 들었다고 인사를 해왔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손에 들려주었다. 투명한 셀로판지로 깨끗하게 싸 놓은 그 친구의 증명사진이었다.
그녀는 금발 머리에 하얗고 갸름한 계란형의 얼굴을 가진 귀여운 여학생이었다. 자신을 ‘데비’라고 소개하더니 “함께 가볼 데가 있다. 꼭 보여주고 싶다”며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Sure!”하고는 데비를 따라갔다. 그녀가 말하는 ‘함께 가볼 데’라는 곳이 과연 어디일까? 멋진 카페? 공원의 산책로? 그러나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한 40분 정도 걸려 간 곳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