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경영컨설턴트
500년 조선왕조는 왜 멸망했을까? 우리 근대사를 배우면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왜 조선이 망했는지 명쾌한 설명 없이 항일과 극일이 근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같은 시기 수백 년간의 봉건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신흥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그 치열했던 과정을 우리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 보편화된 반일 감정 때문이다.
“외국의 이양선들이 들락거리던 19세기 중반, 조선과 일본의 지배층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똑같은 서구의 개항 압력에 대해 문신정권 조선은 왜 끝까지 싸우며 대항했고, 싸움이 장기인 무신정권 일본은 왜 싸우지도 않고 스스로 개국했을까?”
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료들을 파고들었다. 대부분 사건 나열 위주로 쓰여 있고 각국의 날짜 표기 기준이 달라서 사건의 선후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날짜를 동일한 기준으로 환산해야 했다. 결국 당시 개항에 임하는 양국 지배층의 태도가 양국의 운명을 갈랐음을 알게 됐다.
호기심이 풀리니 잠시 개인적 만족감은 있었지만 새로운 소명 의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떻게 하면 국가가 망하는지, 어떻게 하면 국가가 흥하는지’를 알고 나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반일 감정의 색안경을 끼고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진실과 교훈을 알리기 위해 책을 쓰기로 했다.
시기별로 일본을 먼저 서술하고 그다음 조선을 서술했다. ‘일본이 이 정도 앞서갈 때, 조선은 뭐 하고 있었나’ 양국이 확연히 비교가 될 수 있도록…
가장 큰 문제는 양국 인물의 선정이었다. 일본은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즐비해 대상에서 빼는 데 애를 먹은 반면, 한국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인물이 너무 적어서 애를 먹었다. 어떤 시기에는 괜찮은 한국의 인물이 한 명도 없어서 한동안 속을 태우다 결국 외국인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시행착오 끝에 <한일 근대 인물 기행>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수산그룹의 임직원들이 메이지유신 유적지를 탐방하고 왔는데 앞으로도 수차례 탐방할 것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일면식도 없는 수산그룹 정석현 회장에게 내 책을 한 권 보냈다. 얼마 후 비서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나게 되었다.
점퍼를 입은 소탈한 모습이 처음 만난 사람을 편하게 해주었다. 안경 너머 반짝이는 눈빛에서 호기심과 실행력이 강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역사를 정말 사랑하고 있구나 느껴졌다. 특히 메이지유신에 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었다.
직원들까지 메이지유신 유적지 탐방을 계속하도록 하는 이유를 물었다.